놀라운 순간은 우연에서 발생하곤 한다. 만반의 준비를 하면 어쩐지 항상 김이 새기 때문에 때때로 나는 차라리 몰라버리고 만다. 그런 상태에서 발견한 우연은 꼭 선물 같아서. 이를테면 비를 피해 들른 뮤지엄에서 오늘 밤 쇼가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 것. 그리고 그 공연이 아주 훌륭한 순간 같은 것. 혹은 남쪽으로 무작정 걷다가 마주친 911 메모리얼일 수도 있겠다. 가운데 구멍으로 끝없이 빠져들어 가던 물줄기와 폭포 소리. 20여 년 전 연기에 타들어 가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 같던 그것. 그곳으로부터 몇 발짝만 떨어져도 그들은 순식간에 침묵해 버렸다. 추모와 일상의 경계를 체험하며 나는 이 장소가 뉴욕에서 경험한 모든 곳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간 매섭게 불던 바람이 잠잠해지고 따듯한 햇빛이 뉴욕시를 드리웠다. 그에 따라 몸 상태도 조금씩 나아져 갔다. 나는 14번가 유니온 스퀘어 역에서 L라인을 타고 브루클린으로 향했다. 카우치서핑을 통해 메시지를 주고받던 제니를 만나기 위해. 그녀는 나를 호스트 해줄 순 없지만 오늘 브루클린에 있는 공원에서 명상 모임을 주최하니 관심이 있다면 오라고 했다. 나는 맨하탄에 질릴 대로 질려있었고 조금 더 자유로이 숨을 쉴 수 있는 곳을 원했다. 대마초가 아닌 깨끗한 공기를 마시기 위하여 프로스펙트 파크로 향했다. 우리는 어떤 위인의 동상 앞에서 보기로 했다. 조금 일찍 도착해 기다리니 그녀가 나타났다. 외지에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아주 반가운 일이었다. 곧이어 그녀의 친구도 합류하였고, 우리는 공원을 조금 걷다가 한적한 풀밭에 자리를 잡고 서로를 마주 보며 앉았다. 최근의 일상과 감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아이슬란드에서 학교를 마치고 이곳으로 넘어오면서 느껴지는 차이가 버겁다고 했다. 마을에 있는 식당이나 수영장에 물건을 깜빡 놓고 일주일쯤 지나 찾아갔을 때 항상 모든 것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던 것에 관하여. 뉴욕에서 핸드폰을 잠깐 두고 화장실에 갔다 왔을 때 사라지지 않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인적이 드문 풀숲에 있는데도 우리는 서로의 짐을 자신의 옆구리에 바짝 붙여둔다. 우리는 마음 챙김에 관한 책의 몇 문단을 돌려가며 읽었다. 텍스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열심히 읽어 내려갔다. 그다음 우리는 눈을 감고 명상을 했다. 시야를 차단하고 그 외의 감각에서 느껴지는 것을 서로 말했다. 바람 소리가 살랑거리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 비행기가 내 머리 위에서 날고 있어…. 눈을 감고 있지만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갑자기 실은 내가 엄청난 평화 속에 있다는 것이 실감되었다. 눈을 뜨고 서로의 눈이 마주치자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소감을 나누는 시간에 내가 경험과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그들은 최대한의 집중을 발휘하여 들어주었다. 제니가 챙겨온 아로마 오일을 손바닥에 한두 방울 떨어뜨리고 그 향기를 코로 잔뜩 삼켰다. 다시 웃음이 나왔다. 각자의 짐을 챙겨 들고 공원 일대를 조금 걷다가, 맞은 편에서 롤러스케이트를 탄 꼬마 아이가 우리와 가까워질 즈음에 제니의 친구가 아이에게 외쳤다.
나이스 팬츠!
아이가 웃으며 고맙다고 답했다. 그리고 시원하게 쌩쌩 달려 나갔다. 아무래도 이것이 800만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인 듯했다. 아주 느슨하기 때문에 언제든 연결되고 헤어질 수 있는 관계로 가득한 도시. 가볍지만 소중한 연결들. 나는 뉴욕을 그렇게 받아들였다.
해가 질 즈음 나는 맨하탄 숙소에 있는 짐을 정리하고 호스팅을 제안해 준 할아버지의 집으로 향했다. 그의 이름은 제이. 프로필 사진은 본인이 군인이었던 젊은 시절의 사진이었고 '87세, 남자' 라고 적혀있었다. 조금 고민했으나 그가 아니라면 나는 당장 내일 LA로 가야 했다. 이제야 뉴욕의 파편을 경험한 것 같은데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가 사는 아파트에 다다르자 문 앞에 훤칠한 키의 남자가 서 있는 게 보였다. 직감적으로 제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까이 가니 180은 훨씬 넘는 키의 그가 나를 환영해 주었다. 우리는 가볍게 껴안으며 인사했다. 그는 절대로 80대 같이 보이지 않아서 나는 속으로 놀랐는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길에 그가 비밀을 폭로했다. 프로필에 나이를 속여서 기재한 것이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그가 연금술사는 아닐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우리는 집에 들어가 짐을 풀고 가볍게 장을 보기 위해 근처 마트로 함께 향했다.
이곳에 사는 사람과 밤도시를 걷는다는 것은 생각보다도 든든한 것이었다. 나는 넓은 보폭으로 걷는 그를 당당한 발걸음으로 따라잡았다. 그는 성큼성큼 걸으며 쉼 없이 조잘거렸다. 뉴욕에 얼마나 많은 쥐가 사는지 알아? 길거리에 보면 모든 게 쥐야. 아니, 그런 쥐(mouse)는 작고 귀엽기라도 하지. 여기에 있는 건 훨씬 큰 쥐(rat)야…. 봐봐! 지금 저기 쓰레기 봉지 앞으로 지나가고 있네.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는 견주에게)이봐요! 지금 제 뒤쪽으로 큰 쥐가 지나갔거든요? 혹시라도 그쪽 강아지가 발견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으니까 조심하세요.(고맙다는 그에게 엄지를 치켜든다). 마트에 도착해서도 그는 멈추지 않는다. 가만있어봐, 비건이고 글루텐 프리라고? 내가 20년 전에 만난 애인이 그랬었지. 상상할 수 있겠니? 그때 미국에는 비건이고 글루텐 프리고 없었어! 얼마나 찾기 힘들었는지……(이마를 짚으며). 제이는 본인이 찾는 무지방 토르티야가 없다며 마트를 세 군데 들렀다. 그는 분명 카우치 서핑이 아니었다면 내가 평생 마주할 수 없는 종류의 사람일 것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러닝과 푸쉬업을 하고, 삼시세끼를 만들어 먹는다. 설탕에 절여진 미국인들의 외식문화에 혀를 차는 사람이라, 그의 냉장고에는 제로 슈거 에너지 드링크와 무지방 토르티야만이 가득 차 있다. 프로틴에 조금 미쳐있어서 저녁 식사로는 계란 흰자만 분리한 난백액으로 스크램블 에그를 만들고 그 위에 제로 슈거 케찹을 뿌려 먹는다. 간식으로는 무지방 토르티야에 무지방 체다치즈를 올려 돌돌 말아 먹는다.
그게 맛있니?
그럼, 이렇게 먹어온 지 십 년이 넘었어.
제이는 치즈 롤을 말아 먹으며 나에게 어떻게 카우치 서핑을 이용해야 하는지 두 시간 동안 가르쳐 주었다. 그는 나 말고도 80여 명이 넘는 여행자를 본인의 집에 재웠고, 수십 번이 넘게 누군가의 집에 자면서 여행을 해온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내세운 첫 번째 카우치 서핑 이용법은 가능한 여자 호스트의 집에만 머무는 것. 그게 안 된다면 둘째, 게이 혹은 커플이거나 아이가 있는 호스트일 것. ‘한국’ 키워드를 필터에 추가해서 나온 호스트라면 당연히 좋고, 숙박이 확정되더라도 언제나 백업 플랜을 염두에 둘 것. 그는 나의 핸드폰이 없는 앞으로의 여정을 심하게 염려했다. 구글 맵을 켜서 이리저리 캘리포니아주 일대를 보면서 말했다. 차라리 패서디나는 어때? 로스엔젤레스는 많이들 가지만 실은 볼 것도 없어…. 아! 여기(롱비치)는 내가 살던 곳인데 해변이 죽여줘. 이것 좀 봐봐(스트리트 뷰를 보여주며). 호스팅 제안이 들어왔다고? 아냐, 걔는 아니야. 헐벗은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한 남자애들 제안은 거들떠보지도 마. 이 일본 가족이 괜찮겠네. 애들 교육 차원에서 카우치 서핑을 하는 부모들도 있거든. 아니, 오퍼는 그렇게 쓰지 말고, 이렇게…. 그가 대필해 준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서 예술과 영화를 전공하는 학생이에요.
LA의 아트 씬을 탐방하는 것은 제 오랜 꿈이었죠.
전 아주 편안하고 독립적인 관광객이니 당신의 스케줄에 맞출 수 있어요.
당신의 환대는 끔찍한 남자들로부터의 수상쩍은 제안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신이 준 선물 같을 거예요.
당신네의 아름다운 가족과 함께 할 수 있길 바랍니다!
어쩐지 더 수상해 보였다. 끔찍한 남자들로부터 수상쩍은 오퍼 받은 적 없는데. 라고 말하자 그는 이런 감미료도 가끔 필요한 법이야. 라고 답한다. 줌을 통해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는데 내가 거주한 5일 동안 그가 수업하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 대신 나의 R 발음을 자주 지적하곤 했다. 하버드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전쟁에 참여한 그는 내가 세상에 무서운 게 없냐고 물으니 전장에도 있었는데 뭐가 무섭겠냐고 반문한다. 나는 가끔 어느 지점의 극한까지 경험한 사람들의 용맹함이 무척이나 부럽다. 그는 내가 거주하는 5일 동안 본인의 안방을 내어주고 거실에 있는 침대에서 잠을 잤다. 한사코 괜찮다고 해도 여자들의 프라이버시는 존중되어야 한다며 거절했다. 한쪽 바퀴가 망가진 캐리어를 보고는 페이스북 중고마켓 딜러들에게 연락을 마구 보내기도 했다. 덕분에 30달러에 샘소나이트 캐리어를 구했다. 나는 그가 나에게 왜 이런 친절을 베푸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LA로 가는 아침 7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 3시에 함께 집을 나와 공항까지 동행해 주는 그에게 이유를 물었다. 제이는 서퍼들을 돕는 게 본인 인생의 즐거움이자 의무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덕분에 그의 인생관에 탑승해 아주 편하게 공항으로 갈 수 있었다. 구글맵 한번 보지 않고 그저 그를 따라갈 뿐이었다. 내 무거운 백팩을 든 제이는 관리자가 없는 허술한 새벽 지하철을 뉴요커처럼 무임 승차했다. 나를 위해 반대편 문을 열어주면서 Why not? 이라며 어깨를 으쓱한다. 한 시간 반을 이동하면서도 그의 쉼 없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자주 두려움과 공포에 대한 질문을 하곤 했는데 그는 그것을 너무나도 쉽게 바라보곤 했다. 20대에 혼란스러운 건 당연한 거야. 자, 20대에 너는 네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고, 뭘 원하지 않는지도 모를 거야. 30대가 되면 뭘 원하는지는 여전히 모르지만, 뭘 원하지 않는지는 알게 되겠지. 40대가 되어야 본인이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을 알게 돼. 누군가는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빠르게 알게 되기도 하겠지만 뭐 어때? 인생은 긴데. 그러니 두려움이 너를 집어삼키게 하지 마. 너의 감정은 너의 거야. 너의 인생도 너의 거야. 친구, 파트너, 가족들의 것이 되게 하지 마. 너의 어머니가 아파도 학교를 마무리하고, 직장을 구하고, 그들로부터 멀어져. 너의 인생을 살아!
나는 뉴욕에 있으면서 아무것도 정리할 수 없었다. 너무 아프고, 복잡하고, 어지러웠으며 왜 내 안의 혼돈이 멈추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오히려 내 마음속에서 미쳐 날뛰는 기분이었다. 이곳에 도착해서 무슨 경험이라도 하면 무엇이든 한 발자국은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무엇도 정의할 수가 없었다. 제이는 그런 나에게 모든 변화는 여행이 오롯이 끝나고 난 뒤에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여행을 할 때에는 여행에만 집중하고, 집에 도착해 곱씹는 과정에서야 진정한 변화를 체감할 것이라 했다. 그래서 나는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인생의 깜짝선물을 즐겨보기로 했다. 놀라운 순간은 꼭 우연에서 발견되니까, 어쩌면 서울에서도 지속될 이 혼돈을 어렵지만 받아들였다. 생각하지 않고, 그냥 하기로 결심했다. 뉴욕을 떠났고 로스엔젤레스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야 나의 여행이 시작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