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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d horse's reading list

  1. 창조적 행위, 릭 루빈
  2. 마음가면, 브렌 브라운
  3. 만성질환 자연치료 식이요법 갭스, 나타샤 캠벨
  4. 블루 시스터스, 코코 맬러스
  5. 짝 없는 여자와 도시, 비비언 고닉
  6. 리얼리티 트랜서핑1, 바딤 젤란드
  7. 이향인, 라미카민스키
  8. 어떻게 나로 살아갈 것인가, 수지 웰치스
  9. 체력을 바꿔야 재력이 바뀐다, 정주영
  10.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이길보라
  11. 인간관계론, 데일 카네기
  12. 세이노의 가르침, 세이노
  13. 깨달은 들짐승처럼 살기로 했다, 한그루
  14. Two-Dimensional Man, Paul Sahre
  15.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류시화

예술의 목표는 완벽함을 얻는 게 아니다. 내가 누구인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다른 이들에게 공유하는 것이다. 예술가들은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알지만 미처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은 우리와 전혀 다른 독특한 세계관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기적처럼 내 관점과 똑같을 수도 있다. 마치 예술가가 내 눈을 빌리기라도 한 것처럼. 어느 쪽이든 예술가의 인식은 우리가 누구이고 누가 될 수 있는지를 일깨운다. 예술이 가슴에 와닿는 한 가지 이유는 인간이 서로 너무 비슷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작품 속에 담긴 공통적인 경험에 끌린다. 그 안의 불완전함까지도 포함해서. 자신의 일부를 발견하고 이해받는 기분, 연결됨을 느낀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Carl Rogers는 "개인적인 것이 보편적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개인적인 것이 예술을 중요하게 만든다. 그림 실력이나 음악적 기교, 스토리텔링 능력이 아니라 관점이 그렇다. 예술과 다른 분야의 차이점을 생각해보자. 예술에서는 개인의 필터가 작품의 결정적인 요소다. 하지만 과학이나 기술의 목표는 다르다. 우리가 예술을 만드는 이유는 다른 사람에게 유용한 것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다. 우리는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창조한다. 내가 누구인지, 여정의 어느 지점에 놓여 있는지. 관점이 일관적일 필요는 없다. 관점은 단순하지도 않다. 우리의 관점은 다양한 주제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 때로는 모순을 보이기도 한다. 관점을 단 하나의 우아한 표현으로 좁히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가능성을 제한하는 일이기도 하다. 어떤 관점이든 확고하고 진정성 있게 세상과 공유하는 한 예술의 근본적인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예술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누군가의 숨겨진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을 만드는 것과 같다. 관점은 요점과는 다르다. 요점은 의도적으로 표현된 아이디어를 뜻한다. 관점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작품을 출현하게 한 시작이다. 요점이 우리를 어떤 예술 작품에 주목하게 만드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는 아이디어 그 자체가 아니라 예술가의 필터가 그 아이디어를 어떻게 굴절시키는가에 끌린다. 자신의 관점을 아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며 배경에서 작동하고 계속 변화한다. 의도적으로 관점을 묘사하려고 하면 거짓 표현으로 이어질 때가 많다. 정확하지 않고 제한적인 관점에 대한 이야기에 매달리게 된다. 심리학자 웨인 다이어 Wayne Dyer는 오렌지를 짜면 당연히 오렌지 주스가 나오듯 우리를 쥐어짜면 우리 안에 있는 본질이 나온다고 했다. 거기에는 우리 자신도 미처 알지 못 했던 관점도 들어 있다. 관점은 당신이 만드는 예술과 당신이 공유하는 견해에 녹아 있다. 작품을 완성하고 한참 후에 돌아보았을 때 그 안에 담긴 자신의 진정한 관점을 이해하게 되기도 한다. 요점을 꼭 드러낼 필요는 없다. 저절로 나타나게 되어 있으니까. 진정한 요점은 이미 인식과 창조의 순수한 행위 속에서 만들어진다. 이 사실을 알면 자유로워진다. 압박감이 조금은 줄어든다. 작품이 왜 성공적인지 이해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내 의도를 과연 이해해줄지에 대한 걱정을 줄일 수 있다. 자유로워진다. 현재에 머무르며 재료가 우리를 통해 들어오게 하고, 길을 비켜 작품이 완성되게 한다.

예술의 위대함은 직관적인 차원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당신의 자기표현이 관객들에게도 자기 표현의 기회를 제공한다. 내 작품이 그들의 가슴에 닿는다면 내 목소리가 전해지는지, 이해받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이 당신 작품을 이해할 것인지에 대한 걱정은 접어두자. 그런 생각은 예술에도 관객들에게도 방해가 된다.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거나 느껴야 하는지 정해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위대한 예술은 자기표현의 자유를 통해 만들어지고 개개인의 해석의 자유를 통해 받아들여진다. 예술은 대화를 닫는 것이 아니라 연다. 그리고 그 대화는 우연히 시작될 때가 많다.

사람들은 남들과 어우러지기를 원한다. 우리는 자신에게 들어오는 재료의 변화하는 흐름뿐만 아니라 주변 문화의 틀과 경계에도 자신을 맞추려고 한다. 그런데 위대한 예술이 과연 순응에서 나올 수 있을까? 우리의 고유한 관점을 부정한다면 과연 예술가의 존재 목적은 무엇인가? 예술가의 삶을 선택한 사람들은 자신의 필터를 선물로 받아들인다.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비극이다. 그 필터가 굴절시키는 빛은 개인의 고유한 예술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풍경과도 같다. 예술 작품이 어떻게 진정으로 길티 플레저가 될 수 있겠는가?

비틀즈는 척 베리 Chuck Berry와 더 셔를스The Shireles 같은 미국의 로큰롤 아티스트들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하지만 비틀즈의 음악은 달랐다. 그들이 다르기를 원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달랐기 때문에 달랐다. 세상은 열광했다. 모방이 진정한 혁신으로 바뀐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 다. 어떤 예술가나 장르 또는 전통에 대한 낭만적인 비전은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게 할 수 있다. 전통에 가까운 이들과는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세르지오 레오네ser gio Leone 감독의 스파게티 웨스턴(이탈리아산 미국 서부개척시대 영화 - 옮긴이주)은 그가 흉내 내고자 했던 1940년대와 50년대의 미국 서부극과 비교하면 추상적인 사이키델릭 신화이다. 다른 예술가의 관점을 모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같은 물에서 헤엄치는 것만 가능할 뿐이다. 그러니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영감을 주는 작품들을 자유롭게 모방하자. 모방은 오랜 역사를 통해 효과가 증명된 유용한 방식이다.

그 영향력이 무엇인지 분명치 않을 때에도, 문화 속에는 과거와 현재. 미래 사이의 대화가 항상 존재한다. 우리는 창조자와 애호가로서 그 대화에 참여해 관점을 주고받고 대화를 진전시킨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자신이 어디에 있었고 또 어디로 갈 수 있는지에 대한 통찰을 얻는다. 앞으로 가는 것만 가능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누군가 왼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것을 보고 나도 오른쪽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내 우회전은 다른 누군가가 완전히 새로운 방향을 탐험해보도록 영감을 줄 것이다. 이 공생 관계는 영원히 반복된다. 문화는 당신이 누구인지에 영향을 준다. 당신이 누구인지는 당신의 작품에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당신의 작품은 또다시 문화에 영향을 준다. 서로 다른 무수히 많은 관점이 동시다발적으로 공유되지 않는다면 미지의 세계를 향한 끊임없는 행진은 불가능할 것이다.'세상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것'과 '창의성'은 똑같은 말 이다. 자신을 표현하지 않고 어떻게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겠는가.

법칙은 우리를 평균적인 행동으로 이끈다. 특별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면 대부분의 규칙은 적용되지 않는다. 평균은 열망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남들과 잘 섞이는 것이 아니다. 다른 점, 섞이지 않는 부분,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특별함을 더욱더 넓히고 키우는 것이 목표다.

평범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우리 주변에는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메시지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삶은 의미가 없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주입한다.
지난 십여 년 동안 심리학을 연구하면서 '늘 뭔가 부족한 느낌'이 우리의 가정과 기업과 공동체를 억누르는 광경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그래서 감히 말하건데, 이제 우리는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모두 용감해져야 한다. 우리는 대담하게 뛰어들어야 한다. 끊임없이 부러워할 대상을 찾고, 비난할 대상을 잡아내는 일을 제발 멈춰야 한다.
우리는 감정을 견뎌내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단 하나의 예외가 분노다. 분노는 이차적인 감정이다. 분노는 우리의 내면에 숨어 있는 복잡한 다른 감정들을 가리고 숨기기 위한 사회적 가면일 뿐이다). 나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 내가 취약해진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미리 준비한 원고를 내려놓고 청중과 눈을 맞추며 말해야 한다. 사람들 앞에서 벌거벗을 준비를 해야 한다. 맙소사… 나는 벌거벗은 기분이 정말 싫었다. 나는 벌거숭이가 되는 악몽에 자주 시달리는 사람이었다.
취약해지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신뢰해야 하고, 누군가를 신뢰하기 위해서는 취약해져야 한다. 어둠을 탐색할 용기가 있어야 우리가 가진 빛의 무한한 힘을 발견할 수 있다.
1. 당신의 작품에 따라 당신의 가치가 결정된다고 여긴다면 그것을 공유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설령 공유한다 해도 창의성과 혁신이 최고조에 달한 부분을 한두 겹 벗겨내 덜 위험한 작품으로 바꿀 것이다. 당신의 모든 것을 고스란히 담아낸 작품을 내놓을 경우 위험 요소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2. 작품을 원형 그대로 공개했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당신은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작품이 별로이므로 당신은 가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여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당신이 피드백을 얻어내고 의욕을 되찾아 화판 앞으로 돌 아갈 확률은 희박하다. 당신은 혼자만의 세계에 틀어박힌다. 수치심은 당신에게 괜한 시도를 왜 했느냐고 따진다. '넌 괜찮은 사람이 아니야. 주제 파악 좀 해!’라고 수치심은 말한다.

만성질환은 우리가 영적인 교훈을 배워야 할 때, 더 나은 영혼으로 나아가야 할 때 우리에게 찾아온다. 질병은 영적인 교훈이다(illness can be a spiritual lesson). 이 교훈을 부정하고 피하면 몸의 완전한 치유뿐만 아니라 이 교훈이 가져다주는 영적성장도 막을 수 있다. 당신의 영은 성장하기를 원하지만 자아와 마음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이 교훈은 고통스럽고, 그것을 완전히 받아들이기는 매우 힘든 일이기 때문에 자아와 마음이 당신에게 더 쉬운길을 제시할 수 있다.

“전화해봤자 과연 받을까 모르겠다. 받아야 알든가 말든가 하지” 이제 에이버리의 목소리에는 날이 섰다. 언니는 상처받은 티를 숨기기 위해 이런 목소리를 내곤 했지만, 본인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에이버리가 나비잡기에 번번히 실패하듯 손에 안 잡히는 막내와 얼마나 연락을 하고 싶어 하는지 보니는 잘 알고 있었다. 보니는 에이버리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러키를 사랑하는 비법은 말이지 자유롭고 싶은 마음을 알아주는 거야. 러키가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둬. 그러면 결국은 언니에게 날아올 거야.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보니는 끼어들지 않기로 했다.

함께 있으면 우리는 늘 조건 가운데 각자가 처한 상황이 해당되는 부분들을 퍼즐처럼 하나씩 맞춰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에마는 중산층에 호의적이었지만 나는 중산층이라면 질색했고, 에마는 외로움을 두려워했지만 나는 외로움을 감내했다. 그렇게 계속 만나서 대화를 나눌수록 우리가 어쩌다 지금과 같은 사람이 되었는가를 알아내는 일이 각자에게 중요한 과업이라는 걸 더 확실히 알게 됐다.

자신의 본모습 그대로 존재할 수 있는 권리를 되찾으라. 그리고 피고석에서 의연히 일어나라. 당신이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아무도 감히 당신을 심판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오직 당신이 스스로의 선한 뜻으로 자신의 재판관과 배심원이 될 권위를 다른 사람들에게 넘겨주고 있는 것이다.

용서를 구함으로써 당신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잉여 포텐셜을 던져버릴 수 있게 된다. 조종자들은 당신이 죄책감을 안고 살게끔 만들기 위해서 앞으로도 계속 당신의 실수를 상기시키려고 애쓸 것이다. 그들의 도발에 굴복하지 말라. 당신은 용서를 구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용서를 구하는 것은 오직 한 번만이다. 더이상은 아니다.

육체적인 힘을 지닌 사람은 많으나 인품의 힘을 지닌 사람은 드물다. 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위엄의 열쇠는 죄책감이 없는 데에 있다. 개인의 진정한 힘은 다른 사람의 목을 조르는 능력에 있는 게 아니라, 죄책감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 (...) 투쟁하는 것보다 거부하는 편이 더 낫다. 다시 말하면, 선택하는 것이다. 죄책감을 밖으로 짜낼 필요가 없다. 그저 자신의 신조에 따라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무도 당신을 심판할 권리가 없다. 당신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존재할 권리가 있다. 있는 그대로 존재하기를 스스로에게 허용하면 자신에 대한 심판은 더이상 의미가 없어지며, 처벌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진다. 그럴 때 참으로 놀랄 만한 일이 일어난다.

돈을 가지려고 애쓰지 않으면서 돈을 사랑하기란 어렵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 의존적 관계를 피하기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단지 그런 관계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 돈이 들어온다면 행복해하라. 그러나 단지 돈이 부족하다고 해서, 혹은 돈을 잃었다고 해서 괴로워하지는 말라. 괴로워할수록 들어오는 돈이 점점 줄어들 것이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할 때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는, 돈이 늘 부족하다고 한탄하는 것이다. 그 같은 에너지의 매개변수는 궁핍한 인생트랙과 일치한다. 돈이 갈수록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불안감에 굴복하는 것은 특히 위험하다. 두려움은 에너지가 가장 많이 충전된 감정들 중 하나다. 그래서 돈을 잃을까봐 두려워하고 충분히 벌지 못할까봐 두려워함으로써 당신은 가장 효과적으로, 실제로 돈이 점점 줄어드는 인생트랙으로 옮겨가게 된다. (...) 우선은, 자신이 가진 것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만족하라. 이보다 사정이 훨씬 더 나빴을 수도 얼마든지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라. 돈을 가지고자 하는 욕망을 거부할 필요는 없다. 지금으로서는 돈이 강물처럼 흘러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이것을 게임을 하는 사람의 태도로 대하라. 게임을 하는 사람은 언제든지 엄청난 부자가 될 수도 있고, 또 가진 돈을 몽땅 잃을 수도 있다.

돈은 목표가 아니며, 목표에 이르기 위한 수단도 아니다. 돈이란 하나의 부수물일 뿐이다. 목표란 우리가 삶에서 원하는 것이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돈이 아니라 그 목표 자체를 생각해야 한다. 돈을 저절로 따라 올 것이다. 돈은 거기에 따라오는 부수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간단한 일이다. 불가능한 이야기처럼 들리는가? 하지만 이것이 사실이고, 당신은 곧 스스로 이 사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펜듈럼들은 모든 것을 거꾸로 왜곡시켜놓았다. 목표가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돈이 아니다. 당신이 목표를 향해갈 때 돈이 따라 들어오는 것이다.

돈을 쓸 때는 아무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 당신이 어떤 것을 살 때, 돈은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고 있는 것이다. 돈을 쓰기로 결정했다면 나중에 그것을 후회하지 말라. 돈을 가능한 한 적게 써서 조금이라도 아껴보려고 애쓰면 강력한 포텐셜만 만들어질 뿐, 아무런 이득이 없다. 그러면 돈은 한곳에 정체되어 아무 데로도 가지 못한다. 그럴 경우, 당신은 모든 것을 잃게 될 가능성이 많다. 돈은 에너지장에 움직임이 일어날 수 있도록 현명하게 사용되어야 한다. 움직임이 없는 곳에는 포텐셜이 나타날 것이다.

내 가족 중 한 사람이 태어났거나 죽었거나 최근에 결혼을 했거나, 혹은 다른 중요한 일이 있었다고 가정해보자. 이런 일이 나에게 중요한가? 아니다. 거기에 대해 무관심해야 하는가? 역시 아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차이점을 알겠는가? 나는 단지 그런 일로 문제를 만들어서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는 것이다.

외적이든 내적이든 모든 형태의 중요성은 다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다. 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특별히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누구나 세상의 모든 풍요를 누릴 수 있다. 바닷가에서 물장구치며 재미있게 노는 아이들을 상상해보라. 그 아이들 중 아무도 자기가 착하거나 나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가정해보자. 그들은 바닷물이 좋다 나쁘다 생각하지 않으며, 또한 다른 아이들이 착하다 나쁘다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런 상태가 지속되는 한 아이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연과 조화롭게 하나로 어울린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자연의 아이로 왔다. 자연의 균형을 깨뜨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최선의 것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중요성을 만들어내면 그 즉시 문제가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중요성과 문제 사이의 상관관계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 그래서 세상이 원하는 것을 얻기가 힘든, 적대적인 환경으로 보이는 것이다. 사실은, 소망을 성취하는 길에서 유일한 장애물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중요성이다.

외적 중요성을 줄인다는 것은 무관심이나 과소평가와는 상관없다. 오히려, 무시한다는 것은 마이너스 방향의 중요성이다. 삶에 대해 좀 더 단순한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무시하지도 말고, 과장하지도 말라. 사람들이 좋은지 나쁜지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 (...)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사치를 자신에게 허락하라. 당신의 장단점을 높이 들어올리지도, 낮추어 보지도 말라. 내면의 평화를 향해 나아가라. 당신은 중요하지도 않고 무가치하지도 않다.
만일 당신의 상황이 어떤 사건에 깊이 연루되어 있다면 다른 해결책을 찾아보라. 외나무다리 위를 걸을 때 차분한 마음을 유지하려면 안전장치가 있어야 한다. 상황마다 안전장치는 제각기 다를 것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어떤 것이 안전장치가 될 수 있을지를 자신에게 물어보라. 균형력과 맞싸우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점을 기억하라. 두려움과 흥분을 억누를 수는 없다. 오로지 중요성을 줄일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이 안전장치나 대안을 갖추고 있을 때만 가능하다.

잉여 포텐셜을 만들지 않는 유일한 것은 유머감각이다.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자신과 타인을 놀려먹으면서 웃을 수 있는 능력이 유머감각이다. 이것만 있어도 느낌 없는 맹한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유머란 곧 중요성의 거부이며 중요성에 대한 풍자요 조롱이다.

어떤 일을 대비할 때마다 거기에 과도한 중요성을 부여하는 자기 자신을 포착하라. 하려고 하는 일이 당신에게 정말 중요한 일이라면 거기서 바람을 빼라. 성공을 위한 가장 좋은 처방은 자연스러움, 즉흥성, 그리고 가벼운 태도다. 어떤 일을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면 그것을 단지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으로만 생각하라. 결코 '심각하고 조심스럽게' 준비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중요성이 더 커지기만 한다. 실질적인 행동은 하지 않고 걱정만 하고 있다면 중요성을 더욱 부풀리고 있는 것이다. 중요성의 포텐셜은 행동과 함께 사라진다. 생각하지 말고 행동하라! 행동할 수 없다면 생각하지 말라. 주의를 딴 데로 돌리고 그 상황은 놓아보내라.

삶은 종종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지만 그들은 그 선물이 자신의 계획에 없는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선뜻 받아들이려들지 않는다. "난 다른 장난감을 원했단 말이야!" 그러나 가지고자 했던 장난감을 얻는 일은 무척이나 드문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불만스럽고 언짢아 하는 얼굴로 돌아다닌다. 마음이 자신의 중요성을 낮추고 시나리오에 이탈이 일어날 여지를 인정해주기만 한다면 삶이 얼마나 더 즐거워질지를 상상해보라.

지난 일을 돌이켜보면 당신의 통제가 흐름에 역행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된다. 다른 이들이 제시한 대안들도 전혀 쓸모 없는 생각은 아니었다. 당신의 개입은 헛된 것이었다. 당신이 장애물로 봤던 것은 전혀 장애물이 아니었다. 당신의 지식이 없이도 문제는 스스로 술술 잘 해결된다. 당신의 계획과는 다르게 나타났던 모든 일도 결국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지나가는 말로 들었던 것들이 실제로는 상당히 타당했다. 속에서 느껴지던 불편함이 경고로 작용했다. 당신은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았고, 여전히 만족스럽다. 이것이 내가 처음에 말했던, 흐름이 마음에게 주는 호사로운 선물이다.

"영리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실수를 보고 배우지만, 바보들은 자신의 실수에서 배웁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정말 바보였지요. 그렇지만 자신의 실수와 남의 실수 중, 어느 것에서 더 깊은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영리한 사람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만 알지요. 달리 말하자면, 영리한 사람은 정보만 알고 있을 뿐, 그것을 깨닫지는 못합니다. 그와 달리 바보는 부딪혀 머리에 혹이 날 때마다 거기에서 실수의 핵심을 느끼고 깨닫습니다. 그는 살아 있는 진정한 지식을 얻는 것이지요."

그것은 공동체 지향성의 부재, 다시말해 선천적으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특성으로 요악된다. (...) 그렇게 겉으로는 밝고 잘 적응한 아이처럼 보였지만 속으로는 스스로가 미운 오리새끼 같았다. 어린시절 내내 여러 친구 무리에 속해 있었어도, 나는 그 어느 곳에서도 진정으로 속해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나는 집단의 역학에 구애받지 않고, 솔직한 의견을 나누며 친밀한 일대일 우정을 키울 기회를 갈망했다. 내 존재를 확인받기 위해 집단의 인정이 필요하지 않았고, 다수의 의견이 내 견해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이제 연기를 그만둘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이 무렵, 나는 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집단을 움직이는 원리나 생리에 평생 공감하지 못한 성향 덕분에 내가 유난히 예리한 관찰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행동들을 꾸준히 해독하려고 애쓴 결과였다. 무리를 따르고 싶다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의지가 나에게는 없었다. 그래서 깊이 공감하는 관계 형성을 억누르고 외부인으로 판단되는 사람들을 배제하는 집단 규범에 맞추기 보다 한 사람 한 사람과 강하게 연결되는 길을 택했다. 언제나 집단에서 한 발 떨어져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나는 그 구성원들을 각기 고유한 감정반응, 패턴, 개성을 지닌 개인으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알게 되었다. 비록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더라도 내가 집단의 합의에 끊임없이 의문을 품어왔고 그로 인해 남들이 보지 못하거나 보려 하지 않는 시각에서 문제를 풀어내는 창의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게다가 유행하는 활동, 유행, 취미에는 대부분 관심이 없었기에 오히려 나만의 관심사와 학업에 놀라울 만큼 집중할 수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접한 '정상'의 정의 가운데 가장 설득력 있었던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예측 가능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향인은 운명을 함께 나눈다는 감각을 느끼지 않는다. 이향인에게 혼자 있음은 삶 전반에 걸친 자연스러운 상태라서, 오히려 고독 속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그들은 반대로 집단 속에 있을 때 극심한 외로움을 느낀다. 그 불편함의 대부분은 자신에게 기대되는 역할에 맞춰 어울리려 애쓰는 데서 비롯된다. 이향인들에게 그런 연기는 극도로 소모적인 일이다. 함께 있어서 위안이 되고 즐겁다면 에너지를 쓰는 것이 의미가 있겠지만 이향인에게는 오히려 그 반대다.

"진정한 의미에서 타인과 어울릴줄 아는 사람만이 우주에 홀로 있는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렇지 못한 이들은 남들에게 질척거리며 군중 속에 묻어갈 뿐이다. D.H.Lawrence"

L이 선호하는 대화상대는 잡담을 건너뛰려는 그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함께 깊이 있는 이야기로 곧장 뛰어드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향인은 깊은 대화를 나눴다고 해서 반드시 깊은 관계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화는 그 자체로, 의견과 관점을 진솔하게 주고받는 일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 보기에 '쓸데없이 진지한 것'을 견디지 못해, 이향인은 종종 우스꽝스럽게 굴거나 농담을 즐기곤 한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이것이 진지한 대화를 망치거나 엄숙한 순간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로 비칠 때도 있다. 반대로 어떤 경우에는 꼭 필요한 순간에 신선한 가벼움과 해방감을 불어넣어주기도 한다. 언제나 참여자라기 보다는 관찰자로 살아가는 이향인은 일상에서 부조리를 포착하는 감각이 뛰어나며, 이는 유머의 훌륭한 소재가 된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분명히 알게 되었다. 우리는 합의된 의견을 고수하는 문화를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설령 그것이 무너진 제도의 피해자들에게서 삶에 복귀할 두 번째 기회를 빼앗는 일이 되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이 경험은 집단 사고가 만들어낸 통념에 순응하지 않는 다양한 관점과 발상이 우리 사회에 절실히 필요하다는 내 믿음을 다시금 굳건히 해주었다.

소속감과 합의는 독창성과는 거리가 멀다. 군집적 사고에 구애받지 않는 이향인은 독창적인 사상가다. 그들은 다른 이들과 똑같은 것을 보지만 집단의 압력에 휘둘리지 않기 때문에 다른 가능성이나 해석을 탐구할 수 있다. 또한 대중문화와 대중오락에 크게 관심이 없어서 내적 성찰과 창의성을 원동력 삼아 지적 모험을 자주 떠날 수 있는 정신적 여유를 지니고 있다.

만약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특정시점을 떠올려보라고 한다면 많은 이들이 당시 라디오에서 늘 흘러나오던 노래나 유행했던 옷차림을 언급할테지만, 이향인은 자신이 실제로 겪었던 구체적인 경험을 이야기할 것이다. 요컨대, 이향인은 '공동의 기억'보다 자기 자신과 시간 속을 항해하는 '개인적 여정'에 집중한다.

내면의 견고한 나침반이 없으면 우리는 '집단의 지혜'를 개인적으로 깨우친 상식이라고 착각한다. 그리고 나의 내적 신념, 가치, 선호가 집단의 그것과 충돌할 때면 집단과 보조를 맞추고 사회적 인정을 얻기 위해 나의 신념과 가치를 포기하거나 억누르는 법을 배운다. (...) 내면의 생각, 꿈, 욕망에 마음을 닫지 않았다 해도, 우리는 그것들이 잘못되었다거나 이기적이라고 믿고록 오랫동안 길들여져 왔다. 어린시절 자연스럽게 품었던 그 경이로운 감정들은 억눌려 점차 소멸하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집단이 멋지다고 하는 것들에 대해 열정을 지어내거나 흉내 낼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타협할 수 있다고 여기는 문제에 대한 강한 거부감 / 누구나 재밌다고 여기는 일에 대한 무관심 / 겉으로는 매우 유연하고 사려깊어 보이지만 속으로는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신념(혹은 고집처럼 보일 수도 있다) / 시간이 지나며 관계가 깊어질수록 이향인 지닌 어떤 냉담함 / 전통이나 사교모임에 대한 거부감 / 집단 속에서 드러나는 어색함

그들은 아무리 애써도 고분고분하게 굴고 무난하게 어울리며 규율에 맞춰 순응할 수 없다.

공동체 지향인은 아무리 고되고 무의미한 일이라도 생계를 위해 감내할 수 있지만, 이향인은 일에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면 그냥 넘어가지 못한다. 예컨대 이향인은 "이 일을 하다보면 혼자 생각할 시간적 여유가 전혀 없지만, 그래도 주말에 쉴 수 있고 휴가가 많아서 괜찮아"라는 식으로 자기자신과 타협할 수 없다.

어린시절의 특별한 순간들을 잊어버리는 아이들이 많은 이유는 지금 보고있는 것들이 훗날 소중한 추억이 되리라는 사실을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그걸 알게 해주는 것이 바로 부모가 해야 할 일이다. 나주엥 소중한 추억이 될 일들을 아이가 간주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자.

아인슈타인은 에너지의 상태를 세 가지로 나누었다. 첫 번째 상태는 에너지가 들뜨는 현상이다. 이것은 보통 사람들도 누구나 겪는 현상이다.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항상 동기 없이 흐릿한 초점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결심이 올라오기도 하고, 갑자기 열심히 하려는 구간이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동기뷰여는 위대한 사람들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공기처럼 가지는 것이다. 두 번째 상태는 들뜬 에너지가 바닥으로 다시 내려가는 자연 방출 현상이다. 에너지가 들뜨는 순간 사람 몸이 공중에 뜨는 것처럼 불안정한 상태가 되기 때문에 바닥의 안정 상태로 내려가려든다. 이것은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열정을 가질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열정이 들어왔을 때 그 불안정함을 오래 버티지 못한다. 세 번째 상태는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것으로 불안정함 속에서 기하급수적인 에너지 상승을 유도하는 것이다.

아이를 뒷좌석에 태워놓고 잡음을 만들건지 성공을 유도할 이야기를 들려줄 건지는 아주 사소한 차이지만 하루의 수첩에 언제나 거대한 격차로 기록되어 있다. 세상은 정확히 유도방출의 세계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입양된 스티브 잡스는 그 세계를 유도해줄 부모님의 힘이 부족했지만, 그는 후기 전문화의 연료를 스스로 주입하기 시작했다. 조기 전문화에 미쳐있는 나라에서 혼자서 후기 전문화를 감당하는 과정을 확인해보자. 잡스는 마크 저커버그가 그러했듯이 대학을 중퇴했다. 무언가 둥둥 떠다니는 열정은 있는데, 이십 대 특유의 들뜬 느낌으로 이것이 손에 잡히지는 않았다. 뇌가 히피문화에 절여진 상태로 자신이 원하는 게 나타나기 전까지는 일체의 수업을 거부했고, 가부좌를 틀고 방안에 혼자 앉아서는 나는 누구인가? 같은 철학과에서나 할 법한 질문을 아낌없이 뱉어댔다. 이런 학생은 엘리트들을 가장 이른 시점에 선발하는 미국 사회와 당연히 맞지 않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는 원래 조기 전문화의 세상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와 비슷한 후기 전문화의 영혼을 가진 대학에 알맞게 누워있었다. (...) 교육에서 무엇이 핵심 가치인가? 조기 전문화의 스타를 찾는 것이 아니라 후기 전문화를 버텨낼 체력을 가진 학생을 찾고 지력을 평생에 걸쳐 농사 짓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지력은 앞에서 아인슈타인의 두뇌처럼 잘못된 환상을 가지고 떠받드는 것들이 아니라 뒤에서 거대한 재력을 받칠 올바른 도구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 후기 전문화의 세상은 당신의 번아웃을 막을 뿐만 아니라 인생 전성기를 찍을 위치를 하버드 입학장 어쩌고가 아닌 월스트리트 한복판으로 올바르게 안내한다. 그러나 사회는 기하급수적인 세상을 하버드부터 시작된 물결로 이해하기 때문에 그것과 맞서 싸우는 것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 된다. 당신이 조기 전문화의 세상에서 당신의 에너지를 후기로 올바르게 유도만 해줄 수 있다면 노력은 끝없는 지루함을 위한 것이 아니라 특정 시점에 폭발적인 성장을 받치는 위대함의 도구가 된다.

다락방에서 왜 이게 이렇게 기하급수적으로 흘러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1982년에 다락방에서 오들오들 떨던 여자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불확실함을 연료로 쓰기 시작했으며, 1983년에 그 에너지를 100배로 띄울 사람이 알맞게 숨어있었고, 1984년에 MTV가 시작한 기하급수적인 세상에 그만한 에너지로 등장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현상은 앞에 10년 넘게 꿈꿔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사람이 후기전문화의 여신으로 변모해서 단 1년 만에 증폭한 세상이다.

"많은 실패의 이유는 사람들이 성공에 얼마나 가까웠는지 모른 채 포기했기 때문이다" 성공은 당신이 얼마나 강한가가 아니라 얼마나 가까웠는가로 정해지는 것이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단계에서 몇 발자국만 더 밟으면 기하급수적으로 증폭할 수 있었다는 걸 모른 채 포기했다는 뜻이다.

(보강간섭과 소멸간섭) 당신이 매일 만들고 있는 습관을 떠올려보자. 습관은 파동을 균일하게 만드는 행동이다. 파동은 같은 것을 끌어 당기면 겹쳐지고 합쳐진다. 당신이 습관을 만드는 것은 바로 이 파동을 겹겹이 쌓는 것이다. 파동이 높게 쌓일수록 당신이 의식하지 않아도 그 시간만 되면 그 행동을 하도록 유도된다. 성공은 복잡한 것이 아니라 단순하게 쌓고 유도해서 방출하는 힘이다. (...) 반대로 소멸간섭은 파동이 뒤죽박죽으로 뒤엉켜서 올라가려는 파동의 꼬리마저 목을 조여서 바닥에 같이 뒹굴게 한다. 파동이 다르면 서로 깎아먹는 관계가 되기 때문이다. (...) 과학자들의 눈에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며 하는 모든 종류의 노력은 파동을 만드는 것과 같다. 습관은 파동을 균일하게 만들어 보강간섭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똑똑한 행동이고, 뜰쭉날쭉 기분 나는 대로 하는 노력은 파동을 복잡하게 만들어 소멸 간섭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면접을 보러 가야 하는데 그것도 걱정"이라고 회신을 보냈다. 고민중이라고 했지만 면접을 볼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떨어지면 어 쩌나 불안했다. 붙어도 걱정, 떨어져도 걱정. 비행기표를 끊고 숙소를 예약했다.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가봐야 알 수 있으니까 무조건 가라.”
엄마다웠다. 눈으로 직접 봐야만 알 수 있으니 가라. 당신들이 지닌 삶의 철학이었다.

물론 당신이 파업 사태를 해결하거나 배심원단 앞에서 연설하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집세를 깎고 싶을 때는 있을 수 있다. 그때도 우호적인 접근 방식이 도움이 될까? 다음 사례를 살펴보자.
엔지니어로 일하는 O.L.스트라우브는 집세를 깎고 싶었다. 그리고 집주인이 강경한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스트라우브는 우리 강좌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집주인에게 임대 기간이 끝나는 대로 집을 비우겠다고 편지를 썼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집세를 조금 깎을 수만 있ㄷ면 더 머물고 싶었죠. 하지만 가망이 없어 보였어요. 다른 세입자들도 집세를 깎아 보려 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었거든요. 모두가 집주인이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사람을 대하는 방법에 관한 강의를 듣고 있으니, 한번 시도해 보고 어떻게 되는지 보자.'
집주인은 제 편지를 받고 곧바로 비서와 함께 저를 만나러 왔습니다. 저는 찰스 슈왑의 방식대로 그를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선의와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죠. 집세가 비싸다는 말은 일절 꺼내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 집이 얼마나 마음에 드는지만 이야기했어요. 정말입니다. 저는 '진심으로 인정하고 아낌없이 칭찬'했어요. 집주인이 건물을 운영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칭찬하고, 1년 더 머물고 싶지만 그럴 형편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집주인은 세입자로부터 그런 환대를 받아본 적이 없는 것 같았어요. 제 말을 듣고 어찌할 바를 모르더군요.
그러더니 집주인이 자기 고충을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불평하는 세입자들 얘기였어요. 한 세입자는 그에게 편지를 14통이나 썼는데, 그중 몇 통은 모욕적인 내용이었다고 하더군요. 다른 세입자는 위층에 사는 사람의 코골이를 멈추지 않으면 계약을 파기할 거라며 협박했다고 하고요. 그는 '이 집에 사는 것을 만족해하는 세입자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집세를 조금 깎아 주겠다고 하더군요. 저는 조금 더 깎기를 원했기에 제가 낼 수 있는 금액을 말했더니, 그는 두말 없이 이를 수락했습니다.
그리고 집을 나서면서 저를 향해 '제가 손봐 드려야 할 곳이 있을까요?'라고 묻더군요.
제가 다른 세입자들처럼 집세를 깎으려고만 했다면, 분명히 저도 그들처럼 실패했을 겁니다. 우호적이고, 공감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접근한 것이 성공의 비결이었어요."

내가 수집하는 것 중에 모형 자전거가 있다. 이미 50개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인생은 자전거와 같다. 뒷바퀴를 돌리는 것은 당신의 발이지만 앞바퀴를 돌려 방향을 잡는 것은 당신의 손이며 눈이고 의지이며 정신이다. 당신의 발이 '생활'이라는 이름으로 당신은 움직여는 주지만 정작 당신의 손은 호주머니 속에 깊이 박혀 있는지도 모른다. 정작 당신의 눈은 당신 앞에 놓인 길을 바라보지 않고 옆에서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오토바이들과 스포츠카만 부러운 마음으로 바라볼지도 모른다. 때문에 비록 열심히 페달을 밟고는 있지만 당신이 탄 자전거는 제자리를 맴돌 뿐이다. 27

자기 삶의 노예가 되어 자기 생활과 시간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돈의 주인이 될 수 있단 말인가. 29

---> 문제해결. 문제해결. 나는 정확히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려고 하는가?
지금 나의 문제는 아토피, 컨디션. 아토피가 있으니 집중도 안되고 모든 결정에 어려움이 생긴다. 아토피가 있는데 당당하게 산다? 불가능하다. 이건 가능한 영역이 아니다. 그러니까 아토피가 나타나지 않게 철저히 관리해야한다.

문제가 있으면 문제를 해결하려고 덤벼드는 것이 올바른 태도이다. 문제는 그대로 남겨 둔 채 그 문제로 인하여 생긴 스트레스만을 풀어 버리려고 한다면 원인은 여전히 남아 있는 셈 아닌가. 휴식을 충분히 갖고 쉬라고? 웃으라고? 한 달을 바닷가 해변에서 뒹굴어 보아라. 백날을 하하 호호 웃어 보아라. 문제가 해결되는가? 웃기는 소리들 그만해라. (...) 스트레스를 없애는 가장 정확한 방법 역시 스트레스를 주는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그 원인을 뿌리째 뽑아 버리는 것이다. 장담하건대 그 모든 원인은 일이나 인간관계에서 발생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여야 하는지 모르는 당신의 무지 그 자체이다. 즉, 외부적 상황 때문에 스트레스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 외부 상황을 어떻게 해야 헤쳐 나가는지를 모르고 있는 당신의 두뇌 속 무지 때문에 생긴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무지함의 뿌리는 바로 게으름이다. 스트레스를 해소한답시고 빈 맥주병을 쌓아 가지 말고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라. 절대 회피하지 말라. 책을 읽고 방법론을 찾아내라. 그게 바로 스트레스를 없애는 제초제이다.

요행수를 바라거나 무엇인가에 쫓기며 하는 투자는 언제나 허무하게 끝나기 마련이다. 50

스크래치(scratch) "긁어서 내는 흠집, 긁다, 흠집을 내다"라는 뜻인데 "지운다"는 뜻도 있다. 운동경기에서 땅에다 선을 그으면 출발선이 되기 때문에 "출발선, 출발점"이라는 뜻도 있으며 scratch along은 "근근이 살아가다", from scratch는 "출발점에서, 맨 처음부터, 무에서"라는 의미이며, scratch up은 "돈 같은 것을 긁어모으다, 푼푼이 저축하다"라는 뜻이다. 미국 속어에서는 "돈"이라는 뜻도 있다.
내가 말한다. 경제적으로 실패하였다면 저 아래 낮은 곳으로 내려가라. 체면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그 체면에 "흠집을 내라scratch". 출발점을 저 낮은 곳에 다시 "그어라scratch". 당신이 놓치려고 하지 않는 생활 수준이라는 것을 "지워 버리고scratch" 새로운 "출발점scratch"에서, "무에서from scratch", "근근이 살아가면서scratch along" "돈을 모아라scratch up". 그러면 "돈scratch"이 쌓이게 된다. 이것이 실패로부터 탈출하는 비결이다. 스크래치하라!" 52

그러나 로버트 슐러는 절벽에서 떨어지고 있는 상황일지라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한다. 떨어지고 있으므로 하늘을 향해 날아 볼 수는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떨어지던 중 비뻑 마른 두 팔로 온 힘을 다해 세상 속으로 날갯짓을 시작하였을 뿐이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라는 말을 그래서 나는 좋아한다. 절망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그런 날갯짓을 할 줄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절망의 골짜기에는 밑바닥이 없다. 아무리 깊이 떨어져도 우리를 산산조각으로 부서뜨릴 절망이란 이 세상에는 없다는 말이다. 우리를 파괴시키는 것은 우리 자신일 뿐이다. 56

[트레인스포팅]은 영국에서 기차가 처음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생긴 말로, 사람들이 기차역 플랫폼에 모여 역으로 들어오는 기차의 번호를 맞히는 게임을 뜻한다. 이 영화의 극작가 존 호지는 "이런 게임을 하는 사람들, 즉 트레인스포터는 혼돈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바로 잡아야겠다는 행동 양태를 가진 사람을 일컫는 것일 수 있으며 이는 영국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현재를 사는 모든 젊은이들의 모습"이라고 하였다. 결국 [트레인스포팅]은, 삶은 우리에게 달려오지만 우리는 삶의 번호를 알지 못하며 다만 번호를 맞히는 게임을 할 뿐이라는 의미를 던져 준다.

---> 포레스트 검프 life is a chocolate box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즉각 내 말대로 하지 않고 계속 머뭇거리면서 내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그의 질문들은 정확히 표현하면 궁금한 점들이 아니라 안달이었고, '내가 이렇게 한다고 해서 과연 세이노 말처럼 될까'하는 끊임없는 의심이었다. 왜 사람들은 내가 이미 실제로 경험한 것을 말해 주는데도 믿지를 못할까? 정말 이러한 의심은 미래를 미리 계산하여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가난한 자들의 공통적 특성이다. 승자는 일단 달리기 시작하면서 계산을 하지만 패자는 달리기도 전에 계산부터 먼저 하느라 바쁘다. [미래를 미리 계산하지 말아라] 58

명심해라. 내가 믿고 있는 원칙은 단 하나, 모르면 괴롭고 알면 즐겁다는 것이다. (...) 결국 어떤 일에 대한 재미는 그 일에 대하여 얼마나 관심을 쏟고 관련된 지식을 얼마나 많이 갖고서 경험하는가에 따라 좌우되는 문제이다. (...) 왜 사람들은 일을 재미나게 하지 못하는 것일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일을 완전히 알려고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전문직 종사자들도 면허증이나 자격증 하나를 따면 더 이상 공부를 하지 않는다. 155

학습능력 이제 다시 무엇을 배워야 할까를 생각하여 보자. 우선은 강 건너 저쪽에서 발생하는 일들보다는 당신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 중 당신이 모르는 것들에 대해 공부하면서 학습 능력을 길러야 한다(학생이라면 학업에 충실하여야 하는데 개떡 같은 과목이라 할지라도 학점은 당신이 학습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파악하는 일차적 기준이기 때문이다). 학습 능력이 있다는 것은 전혀 모르던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며 그 능력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전혀 아니고 살아가면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스스로 키워 나가야 한다.
예를 들어 수도꼭지가 고장 났을 때, 하수구가 막혔을 때, 화장실 환풍기가 고장 났을 때, 생각지도 않았던 세금고지서가 나왔을 때, 소송을 하여야 하는 일이 발생했을 때, 어떤 계약을 하여야 할 때, 그때마다 배워야 한다. 인터넷을 통해 얼마든지 배울 수 있는 세상 아닌가.
나는 나 자신의 학습 능력을 키우고자 별짓을 다 하며 살아왔다. 예를 하나 들어 보겠다. 나는 한강변에 건물이 하나 있는데 바로 앞에 강변북로와 철도와 일반도로가 나란히 놓여 있다. 도로가 많다는 것은 교통소음이 아주 심하다는 뜻이다. 한강변이므로 유리를 전면에 많이 배치하여야 하는데 밖에서 소음 측정을 하여 보니 종종 80dB이 넘었다. 바로 옆 고급빌라는 수입산 3중 유리를 사용하였으나 실내에서 낮에 48dB이 나왔고 좀 시끄러웠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열심히 구글링을 하였고 소음 차단 관련 논문이 영국에 압도적으로 많음을 알았다. 마차가 다니던 길에 자동차가 다니면서 소음이 커졌으나 영국인들은 건물을 새로 짓는 대신 옛날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소음을 줄이는 방법을 모색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200파운드 정도를 주고 논문 자료 하나를 구입한 후 열심히 공부하였고, 거기서 나오는 내용들을 근거로 창문 프레임을 설계하여 발주하고 유리도 어떻게 설치하여야 하는지도 알려 주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실내에서 들리는 소음은 컴퓨터 팬 소리 정도 들리는 40dB 이하이며, 설치 당시에는 한국유리에 관련 자료도 넘겨주었다. -이런게 학습 능력이다. 학습 능력이 있으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여도 스트레스를 받는 대신 해결책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면서 엑스터시도 느끼고 도파민도 솟아난다는 것을 나는 안다(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런 경우 창호 회사나 유리 회사에서 소음 방지 전문가를 찾으려고 할 텐데 나는 왜 고생을 사서 했을까? 기본적으로 나는 이른바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경험적 지식은 존중하지만 그들이 경험한 적 없는 새로운 사례에 대한 해결 능력은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132

노력이란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더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면서 하기 싫어하는 것을 더 많이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노력이란 싫어하는 것을 더 열심히 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더 열심히 하는 것은 노력이 아니라 취미 생활일 뿐이다. 노력하라. 기회는 모두에게 제공되지만, 그 보상은 당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차등적으로 이뤄짐을 명심하라. 170

사장을 고르는 법

첫째, 사장이 오너인지 아닌지를 살펴라.
둘째, 사장이 오너라고 할지라도 돈주머니를 가진 그 오너를 직접 대면하지 못하는 곳은 피하라. 오너 대신 상사들이 겹겹으로 늘어서 있는 곳에서는 일하지 말라는 말이다. 대기업이 대표적으로 그런 곳이다. 부자가 되려면 사장의 마음을 배워야 하는데 사장과 거리가 너무 먼 조직 내에서는 사장의 눈높이를 배울 수가 없다. 게다가 육체와 시간을 헌신하며 제 아무리 노력하여도 봉급표가 서류로 확정되어 있기에 수입이 올라가지는 않는다. 때로는 당신이 세운 공을 상사들이 차지한다. 그들이 임의적으로 당신의 몸값을 올려 주지도 못한다. 당신이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밤잠을 설치며 능력을 배가시킨다고 하여도 당신의 월급을 결정하는 사람은 당신을 모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인원이 많기 때문에 대부분은 피자 조각과 같이 토막 난 일만 배울 뿐이며(대단히 중요한 사실이다) 정말 특출나지 않는 한 고속 승진이 어렵다. 결국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권유하는 직장은 중소기업 이하 규모의 회사 혹은 가게로, 돈주머니를 쥔 사장과 자주 접하며 일하는 곳이다. 172

결코 오해하지 말라. 평생을 일 중독자로 살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언제나 내가 직원들에게 입버릇처럼 한 말이 있다. "너희가 어제 밤늦게까지 일하였다고 내가 고마워할 것으로 기대하지는 말아라. 일 때문에 늦게 퇴근하는 사람일수록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아라. 너희는 방직 기계 앞에 서서 실을 뽑아내는 노동자가 아니다. 머리를 써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너희가 날이 갈수록 일을 빨리 마치기를 바란다. 우리 인생의 목적이 평생 일하는 데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일에 능숙해져야 한다.
처음에 8시간 걸리던 일을 6시간으로 줄이고 남은 2시간에 추가적으로 다른 일을 수행하는 과정이 반복될 때 비로소 몸값은 계속 올라가며 경제적 자유에 좀 더 가까워지게 되기 때문이다. 일을 빨리 마치려면 머릿속에 든 것이 많아야 한다. 그러므로 제발 좀 공부해라. 반복되는 일은 개선해라. 개선 없이는 일하는 시간을 줄일 수가 없다. 빨리 일을 끝낼 방법을 반드시 찾아내라. 그리고 제발 일이 끝났는데도 윗사람이 사무실에 있다고 눈치 보며 남아 있지 마라. 일은 없지만 남아서 책을 읽거나 공부하는 것은 얼마든지 권장한다. 저녁은 회사에서 기꺼이 제공할 것이다." 180

어느 직업을 가졌든, 세상으로부터 더 많은 경제적 대가를 얻어 내려면 그 대가를 결정하는 세상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세상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자기 최면에 빠져 살게 되면 돌아오는 것은 실패와 좌절뿐이다.

세상의 기준

약 십수 년 전 기사 한 명을 새로 채용하였다. 그 시절에 나는 언제나 신경이 날카로웠다. 보통의 직원들은 사장에게서 야단을 맞으면 얼굴이 하루 종일 굳어 있다. 하지만 그는 내가 별것도 아닌 일에 불덩이같이 화를 내었어도 5분 후에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사장님, 약속 장소에 가실 시간입니다." 그는 자신이 아는 길이어도 지도를 미리 보고 샛길들을 확인하였다. 그런 태도를 보고 [막히면 돌아가라]라는 책을 사다 주었더니 그는 너무도 좋아하였다. 대부분의 기사들은 길이 막혀 차가 꼼짝달싹 못 하면 "이게 내 탓이냐?"는 태도를 보였지만 그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사장님, 저 옆 골목으로 한번 가 보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나는 언제나 찬성이었다.
그는 오후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음에도 "오후에 비가 안 올 수도 있다"고 하면서 차를 닦아 놓았다. 그것도 완벽하게 닦아 놓았다. 대부분의 자가용 기사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는 내가 권하는 책들을 다 읽었고 심심하다고 기사 대기실에서 화투를 치지도 않았다. 우선은 차량을 최선을 다해 관리하였고 남은 시간에는 나이 어린 직원들에게 도와줄 일이 없느냐고 묻는 사람이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기 돈으로 차량 정비 서적을 사서 공부하는 기사를 나는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만난 적이 없다.
1년 정도가 지난 후 나는 새로 기사를 구하고, 대다수 임직원들의 상당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를 그 당시 연 매출 400억 원대 회사의 영업부 과장직에 앉혔다. 반대가 극심하였던 이유는 내가 왜 그를 엽업부 과장직에 앉히려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가 내게 아부를 잘해서 내가 그런 결정을 내린 것으로 오해하기도 하였지만, 나는 그가 너희들하고는 일하는 근본 자세가 다르다는 말만 했을 뿐이다.
3개월 정도가 지나자 모든 거래처에서 그의 사람 됨됨이를 칭찬하는 말이 들려왔다. 6개월 정도가 지나자 더 이상 회사 내에서 그의 자질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다시 1년 후, 그는 사표를 들고 나를 찾아왔다. 돈을 어떻게 버는지를 알았다고 하면서 말이다. 나는 정말 기쁜 마음으로 그를 내보냈다. 몇 년 후 그가 업소용 김치 납품 공장을 아내와 함께 운영하고 있음을 들었다. 직원이 10여 명 된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이 이야기에는 후기가 있다. 내가 그를 영업부 과장에 앉혔을 때 입사한 새 기사는 자기 선임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곧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당연히 자기에게도 그러한 기회가 주어지기를 기대하면서 나에게 하는 모든 행동에 매우 신경을 씀은 물론 내 가족들에게도 아주 공손하게 처신하였다. 내게 종종 자신이 이미 예전에 영업 활동을 한 경험이 있었음을 설명하기도 하였다. 선임자가 영업부 과장직에서 사표를 내자 그는 내게 계속 조르기 시작했다. 자신도 영업부에서 일하여 보고 싶노라고. 하도 귀찮게 조르기에 그를 영업부 평직원으로 보내면서 영업부 임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몇 개월만 데리고 있어라. 얼마 버티지 못할 테니까." 2개월 만에 그는 사표를 냈다.
왜 나는 선임자처럼 행동하고자 애를 쓴 그를 무시하였을까? 세상이 원하는 자세로 일하는 태도는 뼛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인식에서 나오는 것이며 눈 앞의 홍당무가 탐이 나서 나오게 되는 행동과는 그 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임자가 미처 모범을 보이지 못한 분야에서는 어떻게 행동을 하여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누수 현상이 생기면서 탄로가 나기 마련이며, 남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행동이기에 보는 사람이 없으면 그 본성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적토마는 홍당무가 없어도 잘 달린다고 내가 말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제 무슨 일을 하건 당신의 기준을 바꾸어라. 당신이 정한 기준으로는 절대로 부자가 되지 못한다. 부자들은 세상이 원하는 기준으로 일을 하여 온 사람들이다. 세상이 원하는 기준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높고 넓고 깊다. 세상의 기준에 맞춰 일하라. 그래야 부자가 된다. 182

수많은 아르바이트 학생들 중에서 졸업 후 정식으로 채용을 하고 싶다고 사장이 말할 만한 학생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돈주머니를 가진 입장에서 볼 때, 대부분은 언제라도 즉시 다른 사람으로 대체시킬 수 있는 정도의 일만 한다. 받는 대가가 얼마이므로 그 이상을 하게 되면 손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바로 그런 생각이 가난으로 가는 고속도로행임을 명심하라. 192

그 당시 내가 알게 된 원칙 몇 개: 남들이 하지 않는 서비스를 제공할 것, 절대 오늘의 이득에 눈이 멀면 안 된다는 것, 부자들은 끼리끼리 산다는 것, 한 명의 고객으로부터 신뢰를 받게 되면 시간은 좀 걸리지만 그 주변dml 모든 부자들도 언젠가는 내 고객이 된다는 것.

몇 년 후에 받게 될 대우에 걸맞은 일솜씨를 지금 먼저 보여 주어라. 부자가 아니라면 가진 것은 몸과 시간밖에 더 있겠는가. 그것들을 바쳐 일의 질을 높여라. 그렇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 부자가 되지 못한다고? 아니다. "직장에서 일을 잘하지 못하면 직장 밖으로 나가도 부자가 되지 못한다"고 해야 한다. 일을 못하면 직장 밖으로 나가도 절대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직장 생활을 잘하여야 부자가 될 수 있는 법이다.중요한 것은 직장 생활 자체가 아니라 일이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직장을 그만두고 사회로 나와도 일 잘한다는 평가를 받게 되므로 대가를 더 받게 되기 때문이다. 197

당신이 없으면 회사가 마비될 정도로 일을 하고 지식을 쌓아라. "주어진 일 이상을 배우려고 하는 태도가 재테크보다 먼저 갖추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200

장사를 할 때의 자세 고객이 왜 당신에게 돈을 지불하는지를 정확히 알아라.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만을 생각하고 그것을 어떻게 하여야 충족할 수 있는지만을 연구하여라. 처음에는 힘들고 불안할 것이다. 하지만 내 말을 믿어라. 내가 알려 준 대로만 하면 늦어도 3년째부터는 돈이 쌓일 것이다. 절대로 '이득=판매가-원가'가 아님을 명심해라. 이득은 '고객의 신뢰도*고객 수'임을 결코 잊지 말아라. 217

사업을 할 때의 자세 사업 초기의 직원 고용의 핵심은, 반복적인 일을 대신할 사람을 구하라는 것이지 두뇌를 빌릴 사람을 구하려고 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다시 한번 명심해라. 사업이건 장사이건 간에 그 초기 단계에서 당신이 모르는 일을 다른 사람을 고용하여 시키려고 하면 그 인건비는 생각보다는 비싸게 책정될 수 밖에 없고 그 사람이 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도 당신은 전혀 판단하기 어려우며 그저 그 사람이 보고하는 말에 의존하게 된다는 사실을.(...) 자, 이 모든 것에 대한 지식을 당신이 갖고 있는 상태에서 일을 진행하게 되면 비용은 얼마나 절약될 수 있을까? 절반 정도면 된다(그런 지식을 흡수하는 원천이 된 인터넷에 감사하라. 아울러 인터넷에서 쓸 만한 정보는 대부분 영어로 되어 있음도 알아라.) 왜 그럴까? 당신이 모르는 일을 해 달라고 부탁하게 되면 상대방의 지식을 돈으로 사는 셈이 되고, 당신이 알고 있는 일을 부탁하게 되면 상대방의 시간과 경험적 숙련도만을 구입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224

사업의 자세(2) 광고보다 더 강력한 무기는 입소문이라는 것을 믿어라. 무슨 일을 하던 간에 입소문이 나게 하려면 어쩌다 찾아온 고객의 신뢰를 철저히 받아야만 한다. 고객의 신뢰는 감동에서 나온다. 고객을 감동시키는 법은 간단하다. 약속은 남들 하는 만큼만 하지만 실제로는 그 약속보다 더 많은 것을 해 주면 된다. 233

나를 팔아라 타인에게 신뢰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당신이 누구인지 알려야 한다. 상품과 가격으로만 승부하려고 하지마라. 판매자가 누군지 시시콜콜 알려라. 그게 신뢰를 받는 비결이다. (...) 나는 그들에게 내가 가진 고민, 문제 등등을 얘기하고 상담을 구했다. 놀라운 사실은 그들 중 상당수는 내게 밥까지 사 주었다. 애인하고 문제가 있는가? 친구들과 상의하지 말고당신 고객들과 상의해라. 부모님하고 갈등이 있는가? 그것도 고객들에게 물어봐라. 직장 내에서 문제가 있는가? 그것도 고객들에게 물어봐라.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온갖 좋은 말들을 모아서 DM으로 발송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마라. 쓰레기통으로 다 들어가 버리니까. 그 대신 네 얘길 해라. 그게 너를 파는 방법이다. 너를 판느 것과 너를 자랑하는 것은 다르다. 혼동하지 말아라. 246

신문 읽기돈을 운영할 수 있는 지식은 단순한 금융 지식이나 투자 지식이 아니다. 그것은 쏟아지는 정보를 이용하여 돈의 흐름을 볼 줄 아는 눈이며, 인간 심리를 알고 문화를 이해하는 능력이며, 시장 경쟁의 치열함 속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법의 테두리 안에서 모색하는 힘이다.
그러한 지식을 얻으려는 노력으로 나는 신문을 많이 본다. 수많은 기자들이 사방에서 수집하여 활자화하는 정보들은 내게는 소중한 자산이 된다. 그러나 그들이 지면을 통해 알려 주는 정보 모두를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가 읽는 여러 종류의 일간지와 경제지들 중에서 매일 어느 하나를 택하여 우선 경제란부터 상세히 본다. 경제 흐름을 알려 주는 모든 기사는 정말 놓치지 않는다.
(...) 경제란 다음에 보는 지면은 문화란이다. 문화를 알아야 인간을 이해하고 사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TV프로그램에 대한 내용도 대충은 본다. 다른 사람들 다 보는 연속극이라고 해도 나는 거의 안 보기 때문에 대화 중에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경우를 당하지 않기 위해 기초적인 내용만큼은 알아 두기 위해서이다.
그런 지면들에서 내가 집중을 하며 보는 것은 광고이다. 광고는 사회의 단면이고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호주머니를 어떻게 노리고 있는지를 보여주기에 유심히 본다. 이런 상품이 나왔구나, 이 동네는 부동산이 이 정도 가격이구나, 구인 광고를 이렇게도 하는구나 등등을 재빨리 눈에 집어넣는다. 256

명심해라.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경제 지식은 당신을 절대로 부자로 만들어 주지 못한다. 그 이상이 필요하다. 그래서 책을 좀 읽으라고하면 어떤 사람들은 정치, 문학, 역사, 종교 서적들을 본다. 교양이나 영혼의 양식을 얻기 위함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물론 나도 그런 책들을 읽는다. (...) 그러나 나는 비율로 따져 본다면 그런 책들보다는 돈 냄새 나는 책들을 더 많이 읽어 왔다. 영혼의 양식보다 일용할 양식을 먼저 챙겼다는 말이다. 기억해라. 교양인에게 돈 많이 주는 세상이 아니다. 부자가 되어 경제적으로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당연히 일용할 양식부터 넉넉하게 만들 수 있는 책을 먼저 읽고 그다음에 교양을 닦아라. 사회에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을 먼저 해라. 딱 1년만 미친 듯 하면 장담하건대 내년에는 벅찬 가슴을 갖게 된다. 교양이니 영혼의 양식이니 하는 것들은 그다음에 해결해도 되지 않겠는가. 259

돈이 되는 시간헬라어에서 시간을 의미하는 단어는 두 개이다. 하나는 '크로노스'인데 흐르는 시간을 의미한다. 이것은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대상으로서의 시간이다.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길이 막혀 어쩔 수 없이 보내게 되는 시간 같은 것이 이 크로노스이다. 다른 하나는 '카이로스'인데 의미 있는 시간, 가치 있는 시간, 보람 있는 시간이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 이 땅에서 '잘 산다'는 것은 부자로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크로노스를 카이로스로 바꾸어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크로노스를 카이로스로 변화시키려는 시도가 없는 시간은 그저 세월의 주름살에 불과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시간에는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이외에도 하나가 더 있다. '돈이 되는 시간'이 그것이다. 흔히 시간은 금이니 돈이니 말들 하지만 크로노스로서의 시간은 전혀 돈이 안 된다.출퇴근 길 복잡한 지하철 안에서 이리 볶이고 저리 볶이는 시간은 그저 지나가는 시간일 뿐이며 술에 취하여 인사불성이 되어 있는 시간도 마찬가지이다. 카이로스로서의 시간이라고 해서 돈이 되는 것도 아니다.
부자가 되려면 '돈이 되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 일을 하고 보수를 받았다면 그 노동시간은 '돈이 되는 시간'에 해당된다. '돈이 되는 시간'은 그 시간에 임하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크로노스가 될 수도 있고 카이로스가 될 수도 있다. 똑같은 일을 하여도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무심하게 무성의하게 기계적으로 한다면 그 시간은 크로노스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일을 개선하고자 하고 자신의 힘을 모두 쏟아부으며 최선을 다한다면 그 시간은 카이로스가 될 것이다.
'돈이 되는 시간'은 경제적 대가가 주어지는 노동시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당장은 대가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미래에 경제적 대가가 주어지는 지식을 얻는 데 사용되는 시간 역시 '돈이 되는 시간'에 해당된다.
그러나 부자가 되는 게임은 학교 성적으로만 승패가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부자는 세상에서 받는 대가를 크게 함으로써 될 수도 있지만 세상에 지불하여야 하는 대가를 적게 함으로써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살아가면서 세상에 지불하는 대가는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것이므로 '다른 사람들이 돈을 받고 해 주는 일들'에 대하여 당신이 알고 있다면 지출하는 비율이 줄어들어 주머니에 남는 돈이 늘어나게 된다. 예를 들어 웬만한 컴퓨터 고장은 직접 수리할 줄 안다면 그 수리 지식을 얻는 데 사용한 시간은 '평생' 컴퓨터가 고장 날 때마다 돈을 절약시켜 주는 원천이 된다. '평생'말이다. 따라서 당신이 컴퓨터 하드웨어에 대하여 일단 억지로라도 배워 둔다면 그 시간은 '돈이 되는 시간'이 된다.
시간이 남는다고? 크로노스가 많다는 뜻이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배워 나가라. 우선은 지금 하는 일과 관련된 것들부터 마스터하라. 그렇게 할 때 그 시간은 '돈이 되는 시간'이 될 수 있다. 일과 관련된 책들은 솔직히 재미는 없다. 하지만 재미가 충만한 책들만을 읽는다면 그 시간은 카이로스가 될 수는 있지만 돈이 되기는 어렵다. 재미없어 보이는 지식들을 위하여 '돈이 되는 시간'을 먼저 투자하는 사람만이 크로노스의 굴레에서 벗어 날 수 있다. 그래도 인생은 즐기며 재미있게 살아야 한다고? 장담하건대 당신이 재미있는 것만 즐기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당신의 삶 자체가 조만간 재미없어질 것이다.
나는 무소유의 삶은 살지 못한다
욕심을 버리면 행복해질 수 있다? 맞는 말 같다. 도가의 [태평경]은 말한다. "재물이란 천, 지, 중화의 소유로서, 그것으로 사람을 함께 기르는 것이다. 부유한 집은 단지 우연히 이를 모아 둔 곳에 불과하다. 이는 마치 창고 안의 쥐가 늘 혼자 배불리 먹고 있지만, 이 큰 곡간의 곡식이 본래 그 쥐의 소유가 아닌 것과 같다." 성경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레위기 25:23)"라고 하면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자본주의적 가치를 장려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행무상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 어느 종교이건 그 가르침대로 살았던 성인들은 모두 돈을 초월하여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저 성인들을 존경하며 그 마음이나마 조금 배워 보고자 하는 속세의 나 같은 사람들은 돈에 대하여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부모에게 효도하면서 바람을 피우지도 않고 도둑질도 하지 않았으며 거짓말하지 않고 정당하게 부를 획득한 자라고 하여도 종교 안에서는 안심하지 못한다. 예수는 그런 사람에게 그 부 '모두를 팔아' 이웃에게 나눠주지 않는 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하였다(누가복음 18:18-30). 참으로 실행하기 어려운 주문 아닌가. 그래서 나 같은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하지만 세리장 삭개오가 자신의 소유 모두가 아니라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고 했을 때는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했다(누가복음 19:9). 왜 세무서 직원에게는 천국이 50% 세일가로 제공되는지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재산의 절반 정도를 나누어 주는 조건이라면 할 만하다.
그러나 아직도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성실하게 농사지어 부자가 된 농부가 이제는 좀 놀면서 쉬려고 하는데 예수는 그를 "어리석은 자여"라고 책망한다(누가복음 12:16-21).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자기를 위해 재물을 쌓지 말라는 것이다. 결국 요지는 베풀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행복해질까?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어느 종교에서도 일하지 말라는 말은 없다. 오히려 성경의 달란트 비유를 보면 한 달란트를 그대로 갖고 있다가 주인에게 돌려준 종은 주인에게서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을 받고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는" 벌을 받는다(마태복음 25:14-30).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방관하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고", "있는 자는 그것마저 받아 더 풍족하게 된다"라고 한다. 게으른 자들 덕분에 부자가 되는 사람도 있다는 해석도 할 수 있고 부익부 빈익빈은 피할 수 없다는 말도 될 성싶다.
종교적 차원을 떠나 자연 속에서 무소유의 삶을 산다면 행복을 얻을 수 있을까? 그런 것 같다. 무소유의 삶은 분명 소유를 위한 전쟁에 지치고 피곤한 사람들에게는 대안적 삶이다. 법정 스님의 수필집 [무소유]를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당신이 법정 스님이나 디오게네스처럼 혼자 산다면 무소유의 삶을 살아도 된다. 그것은 정말 대단한 용기이다. 그러나 가족이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식의 행복 추구는 너무나 이기적이다. 아니 모든 것을 포기하기에는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 사람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법정 스님조차 돈 자체는 잘 번다. 99년 1월 국민일보 기사에는 법정 스님이 98년도에 인세로 받은 돈만 2~3억 원이라고 하였다. 디오게네스는 돈 대신 프리섹스를 즐겼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실적으로 선택 가능한 무소유의 삶은, 인간과 동식물과 자연이 공생하며 행복해지는 삶을 제시했던 일본의 농부 야마기시 미요조(1901~1961)의 영향을 받아 전 세계 50여 곳에 세워진 무소유 공동체들에서 엿볼 수 있다. 무소유는 공동소유와는 전적으로 다르다. 이들은 세상의 어떤 것도 소유될 수 없으며 다만 쓰일 뿐이라고 여긴다. 그들은 소유욕이 옭아매는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 더할 나위 없는 마음의 여유를 누리는 것 같다. www.yamagishism.co.kr을 찾아보면 보다 더 자세한 내용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소유냐 무소유냐의 길은 각자의 선택이다. 나는 무소유의 길을 존경하지만 자발적으로 원하였던 적은 없다. 무소유를 실천하기에는 나는 너무 하고 싶은 것이 많다. 속인이라고? 물론이다. 성인인 척한 적도 없지 않은가. 난 같은 속인들을 위하여 이미 60년대에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에서, 소유함으로써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믿는 소유형 인간이 되지 말고 존재형 인간이 되라고 하였다. 소비주의에서 벗어나 창조적인 삶과 상호이해를 기반으로 한 삶의 태도를 가진 인간이 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성인들의 삶에서 진정한 휴머니즘적인 존재 양식을 제안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의 말이 우리의 이성을 움직인다 하여도 우리가 순식간에 소유로부터 초월하여 존재형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제러미 리프킨이 [소유의 종말]에서 "더 이상 소유는 필요하지 않다"라고 아무리 말하여도 무소유의 길을 택하지 않은 삶에서는 소유가 여전히 행복의 한 조건으로 남아 있다. 간디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게는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 그는 무엇인가를 갖는다면 같은 물건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 똑같이 가질 수 있을 때로 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자기 소유에 대해서 범죄처럼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정말 성인이다.
하지만 나는 눈이 오는 날, 길거리 어딘가에서 굶어 죽는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나 자신은 사랑하는 아내와 향기 그윽한 원두커피를 함께 마시고 싶다. 바람 부는 날 나는 깨끗하게 다림질된 셔츠를 입고 싶다. 비가 오는 날 좋아하는 음악을 마음 놓고 크게 듣고 싶기도 하며,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술 한잔 정도는 하고 싶다. 어느 뜨거운 여름날에는 바람이 살랑거리는 창문을 열고 하얀 시트가 깔린 침대에 편안히 누워 팬티 바람으로 낮잠을 자고 싶다. 그곳이 바닷가 해변이라면 더욱 좋다. 매일같이 샤워도 하고 싶으며 샤워 후에 시원한 음료 한잔은 마시고 싶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할 때 버스가 왔다고 같이 뛰어가기보다는 택시를 잡아 편히 집까지 바래다주고 싶었다. 손영란 시인은 이러한 나의 마음을 '별것 아닌 것을 그리워 함'이라는 시에서 비슷하게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시에서 별것 아닌 것처럼 나열되는 '뜨거운 물 목욕', '갓 구운 빵과 커피', '깨끗이 달인 옷' 등을 실제로 누리는 것이 만만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돈이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것을.
영화 [존 큐]에서 주인공 존 큐는 가난한 흑인 노동자이다. 어느날 그의 아들이 심장병으로 쓰러진다. 수술비 25만 달러가 있어야 하지만 자동차 할부금도 내지 못하여 차를 빼앗긴 처지이다. 결국 그는 아들을 살리려고 병원에서 인질극을 벌인다. 아들에게 심장을 주기 위해 권총 자살을 결심한 존 큐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돈도 많이 벌어. 남을 배신 하더라도···. 아빠처럼 바보같이 살진 마. 돈이 있으면 모든 게 다 쉬워···."
나 역시 내 가족이 수술비가 없어 죽어야 하는 상황은 정말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소유하고 싶은 본능을 어쩌란 말이며 황금이 돌로 안 보이는데 어쩌란 말인가. 아무리 사랑이 넘쳐 나는 부부지간이라고 할지라도, 남편의 빚을 갚고자 아내가 여기저기 돈을 꾸러 다니지만 모두 냉랭하게 대할 때 아내는 서러워질 것이다. 쪼들리는 살림에 쓰레기봉투 하나를 아끼려고 지나치게 꽉꽉 눌러 담다가 그만 비닐 봉투의 옆구리가 터지고 말았을 때 아내는 서글픈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나는 내 아내와 내 가족에게 그런 서글픔만큼은 주지 않으려고 했다. 영화 '존 큐'에서 주인공은 불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카드빚은 생각하지도 않고 새 자동차를 구입하는 한심한 가장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돈을 '남을 배신하여야' 버는 것으로 생각한다.
내가 택한 삶은 소유의 삶이었으나 명심하라, 사업과 투자의 종잣돈을 마련하기 위하여 불필요한 소비는 최대한 억제하였다. 즉 소유를 지향하면서도 절약을 미덕으로 삼고 '행복하게 돈을 모으며' 살았다. 그리고 그렇게 하여 모은 돈들은 점점 더 불어나더니 나를 부자로 더욱더 만들어 주었고 그때부터 비로소 소비를 하기 시작했다. 기억해라. 소유를 더 하려면 무소유에 가까운 절약부터 하여야 한다는 진리를 말이다.
우리들의 생활이 철학적 사고와 지고의 선으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인간으로서 누려야 하는 근본적인 것들을 얻기 위해서는 돈이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한다. 당신이 내 가족의 수술비를 줄 것도 아니라면, 그리고 당신이 간디처럼 크게 버린 사람도 아니라면, 내 글에서 아무리 돈 냄새가 물씬물씬 나더라도 "크게 버리면 크게 얻는다."는 헛소리는 하지 말라. 적어도 내 눈에는, 크게 버릴 만한 것을 가져 본 적도 전혀 없는 이들이 무소유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은 자위행위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원칙이 하나 있다. 음악인 경우 내 귀에 들려오는 소리가 내 머리에 어떤 느김을 주는가가 선택의 기준이 된다. 그 음악을 만든 사람의 생애나 평론가들의 얘기, 혹은 영상 자료 등은 절대 그 기준에 들어가지 않는다. 미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내 눈에 비칠 때 내가 어떤 느낌을 갖는가, 그것만이 기준이 된다. 유럽의 미술관들을 채우고 있는 수많은 그림들 중 대다수는 역사적 사건들을 그린 것들이기에 나는 아무 감동이 없으며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 거울을 통해 미궁 속으로 관람자를 끌어당긴다 할지라도 나는 미술사가가 전혀 아니므로 끌려 들어가지 않으며 그것으로 끝이다. 명품 시계? 브랜드는 내게 의미가 없고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야 하는데 대부분 두꺼울 뿐만 아니라 기계식 자동 태엽이어서 귀찮다.
나는 세상을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상관없이 나 스스로의 기준에 맞춰 살아왔고 그게 부자 되는 길로 나를 인도하였다고 믿는다.

우리는 최적화병에 걸려 있다. 최적화병은 무엇인가? 그게 취직이건, 직장생활이건, 결혼이건, 여행이건 '어딘가에 최적의 길이 있을 텐데 난 그곳에 있지 않다. 조금 더 최적인 길로 옮겨가야 한다'라고 스스로를 압박하면서 괴로워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증상은 이 경로를 탔다가 저 경로로 옮겨 가기를 반복하고 그 어느 자리에 가더라도 안절부절못하는 것이다.
비싼 돈 주고 외국 여행을 갔다고 생각해보자. 최적화병에 걸린 사람은 여행의 모든 것을 최적으로 맞추려 한다. 꼭 봐야 할 장소의 리스트를 뽑고 최적의 동선을 짜고 시간 단위의 빈틈없는 계획을 세운다. 그러다가 일정이 늦어지면 스트레스를 받고 아직 못 간 곳을 떠올리며 안절부절못한다. 잠깐 여유가 나면 여행지의 풍광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핸드폰으로 다음 동선을 확인하고 리뷰를 검색한다. 이쯤 되면 이게 지금 여행을 하는 건지 일을 하는 건지 헷갈린다.
여행에서도 이렇다면 커리어에서는 어떨까? 최적화의 강도는 한층 더 세진다. 나에게 커리어 고민을 털어놓은 구독자들에게는 공통적으로 '내가 이제까지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데, 이런 직장이 나의 종착역일 리 없다'는 미련이 있었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직장으로 옮길 날만 꿈꾼다. 만에 하나 원하던 직장에 가게 돼도 조직 분위기나 업무 강도 등의 이유로 퇴사를 고민한다.
이런 탐색이 필요한 것은 맞다. 하지만 많은 구독자들이 그것에 드는 비용을 간과하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처럼 최적화에도 대가가 따른다. 그 대가는 '태도'이다.
(...) 기록뿐 아니라 달리는 과정의 즐거움도 생각해봐야 한다. 결정을 명확히 하고 달리면 호흡과 자세가 가다듬어지면서 달리는 맛이 생겨난다. 길가의 나무와 경치도 눈에 담긴다. '이 길이 최선의 길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길이다. 나름대로 괜찮다. 다음 갈림길까진 이렇게 그냥 달리자'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가 있다. 이 태도가 더 발전하면 시간 기록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게 된다. 진정으로 달리는 과정 그 자체가 즐거움이 된다.
반면, '이 길보다 더 좋은 길이 어딘가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달리는 사람은 호흡과 자세가 흐트러지기 때문에 달리는 맛 자체가 떨어진다. 과정이 재미없으니 빨리 끝났으면 하는 레이스가 된다. 운 좋게 길에 아름다운 나무와 경치가 펼쳐져도 의미가 없다. '아름다운 나무가 있지만 이게 기록을 단축해주는 것은 아니지 않다'하게 된다.

삶의 역설 삶은 역설로 가득 차 있다. 그중 하나를 표현한 말로 '장고 끝에 악수 둔다'가 있다. 바둑에서 유래한 말이다. 고민이 길어질수록 오히려 나쁜 수를 두게 된다는 뜻이다. 나는 이 말을 더 밀어붙여 보려 한다. '장고는 묘수도 악수로 바꾼다' 고민을 길게 늘인다는 것은 이미 사고가 어떤 틀에 갇혔다는 것이고, 이렇게 되면 설령 묘수를 두더라도 좋은 결과로 연결되기 어렵다.

최적화는 머릿속 게임이지만 삶은 나를 던져 살아내야하는 실재다. 학창 시절 공부로 1등했던 사람이 인생에서도 반드시 1등하는 것은 아니다. 머릿속 게임과 몸의 게임은 다르다. '어떤 길을 선택하는가'와 '그 길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가는가'는 완전히 별개의 것이며, 장기적으로 삶을 좌우하는 것은 전자가 아니라 오히려 후자다. 전자에 에너지를 쓸수록 후자는 방치된다. 다시 말해 묘수를 두려 집착할수록 악수를 두게 된다.

Sixteen years later, I still have no idea what happened. I mean, maybe in their minds I was somehow disobeying orders? But no order was given; I know because if there was an order, I would have disobeyed immediately.

광대를 들여보내라
비평은 예나 지금이나 디자인 교육의 기본이다. 학생들은 디자인 지침을 받고, 각자 디자인을 하게 된다. 1~2주 후 학생들은 돌아와 자신의 디자인을 벽에 걸거나 프로젝터로 보여준다. 토론을 하고 또다시 반복한다. 나는 종종 더 나은 방법이 있는지 고민하게 된다.
교수법에 관한 한 나는 내 자신이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요점은 더 나은 교수법을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비평은 쉽게 익숙한 패턴이 되어버릴 수 있고, 그래서 나는 익숙하지 않은 상황을 만들려 노력한다. 한번은 학생들에게 뭔가 귀여운, 보는 이로 하여금 구체적으로 "아, 귀여워!"라는 반응을 불어일으킬 대형 포스터를 디자인하는 프로젝트를 내준적이 있다.
아주 간단해 보인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틀렸다.

신은 구불구불한 글씨로 똑바르게 메시지를 적는다

한 수도승이 제자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 날이 어두워져 머물 곳을 찾던 그들은 경사진 들판 한가운데에서 오두막 한 채를 발견했다. 헛간 같은 집에 누더기 옷을 입은 부부와 세 아이가 살고 있었다. 집 주위에는 곡식도 나무도 자라지 않았다. 여윈 암소 한 마리만 근처에 묶여 있었다.
수도승과 제자가 하룻밤 잠자리를 청하자, 그 집 가장이 친절하게 안으로 맞아들여 신선한 우유로 만든 간단한 음식과 치즈를 대접했다. 가난하지만 너그러운 그들의 마음씨에 두 사람은 감동받았다.
식사를 마친 수도승이 그 가족에게 도시와 마을로부터 멀리 떨어진 척박한 곳에서 어떻게 생계를 꾸리는지 물었다. 주변에 그들이 일구는 변변한 논밭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삶에 지친 얼굴을 한 아내가 쳐다보자 남편이 체념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고 늙은 암소 한 마리가 있을 뿐입니다. 우유를 짜서 마시거나 치즈를 만들어 먹고, 남으면 마을에 가져가 다른 식량과 바꿉니다. 그렇게 겨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튿날 아침 수도승과 제자는 부부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길을 떠났다. 산모퉁이에 이르자 수도승이 제자에게 말했다.
"다시 돌아가서 암소를 절벽 아래로 밀어뜨려라."
제자는 귀를 의심했다.
"저 가족은 암소에 의지해 겨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암소가 없으면 굶어 죽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수도승은 재차 지시했다.
"얼른 가서 내 말대로 하라."
젊은 제자는 무거운 가슴을 안고 몰래 오두막으로 돌아갔다. 그 가족의 미래가 걱정되었으나, 지혜로운 스승의 명령을 무조건 따르기로 서약했기 때문에 암소를 절벽으로 데려가 밀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몇 년 후, 제자 혼자 그 길을 여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전에 묵었던 그 오두막 부근을 지나게 되었다. 과거에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한 후회의 감정이 다시금 밀려오면서, 늦었지만 그 가족을 찾아가 용서를 빌기로 마음먹었다.
산모퉁이를 돌아 예전의 장소로 들어선 제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때 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이 있던 자리에 아름다운 집이 세워져 있고, 정성 들여 가꾼 밭과 화단이 집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풍요와 행복이 넘쳤다.
제자가 문을 두드리자 소박하지만 품위 있는 차림의 남자가 나왔다.
제자가 물었다.
"전에 이곳에 살던 가족은 어떻게 되었나요? 그들이 굶어 죽게 되어 당신에게 이곳을 팔았나요?"
남자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자기 가족은 그곳에서 줄곧 살아왔다고 말했다. 제자는 여러 해 전 스승과 함께 그곳의 쓰러져가는 오두막에서 하룻밤 묵은 이야기를 하며 다시 물었다.
"이곳에 살던 그 가족에게 그 후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남자는 제자를 하룻밤 묵고 가라며 집 안으로 초대해 음식을 대접했다. 식사를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그는 자기 가족의 운명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설명했다.
"우리는 여윈 암소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 암소에 의지해 겨우 굶지 않을 만큼 살아가고 있었죠. 그것말고는 다른 생계 수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암소가 집 뒤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만 했고, 새로운 기술들을 배워야만 했습니다. 버려진 밭에 약초를 심고 묘목들도 키웠습니다. 다른 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 사건은 우리에게 최고의 행운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훨씬 의미 있게 살게 되었습니다."
남자의 얘기를 듣고 제자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스승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구차하게 의존하는 것, 시도와 모험을 가로막는 것을 제거해야만 낡은 삶을 뒤엎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안전하게 살아가려고 마음먹는 순간 삶은 우리를 절벽으로 밀어뜨린다. 파도가 후려친다면, 그것은 새로운 삶을 살 때가 되었다는 메시지이다. 어떤 상실과 잃음도 괜히 온 게 아니다. '신은 구불구불한 글씨로 똑바르게 메시지를 적는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나는 지금 절벽으로 밀어뜨려야 할 어떤 암소를 가지고 있는가? 그 암소의 이름은 무엇인가? 내 삶이 의존하고 있는 안락하고 익숙한 것, 그래서 더 나아가지 못하게 나를 붙잡는 것은? 질문은 그 자체로 삶의 기술이 될 수 있다. 스스로 그 암소와 작별해야 한다. 삶이 더 넓어지고 더 자유로울 수 있도록.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대학 졸업을 앞두고 장차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중에 친구가 모 언론사의 입사 지원서를 구해 왔다. 그는 함께 지원하자며 내게도 한 장 내밀었다. 잘하면 외국 특파원으로 나갈 수도 있다는 친구의 말이 결정적이었다. 우리는 운이 좋으면 히말라야로 취재를 떠나 성자나 외계인과 인터뷰하는 특종을 터뜨릴 수 있을지 모른다고 농담을 하며 열심히 지원서를 작성했다. 그런 우스갯소리를 한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잊기 위한 나름대로의 전략이었다.
필기시험은 열흘 뒤였다. 지금도 서울 북악터널 부근에 있는 국민대학교 앞을 지나갈 때면 그때의 일이 떠오른다. 시험장이 그곳이었다. 어떤 과목이든 자신 있다고 큰소리치면서 곰팡내 나는 월세방에서 밤새워 예상문제집을 풀었다. 드디어 시험일인 일요일, 설레는 가슴을 안고 아침 일찍 시험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학교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시험 장소를 가리키는 화살표 방향을 따라 강의실로 가니 텅 비어 있었다.
정문으로 다시 가서 물었더니 수위 아저씨가 이상한 눈으로 존레논처럼 생긴 장발의 청년을 쳐다보며, 시험은 "오늘이 아니라 어제"였다고 했다. 날짜를 착각한 것이다! 망연자실 서 있다가 수위 아저씨의 눈초리가 하도 강렬해 학교 앞 골짜기에 있는 국밥집으로 가서 아침부터 혼자 술을 마셨다. 사회에 편입될 수 없는 천형을 받은 자신을 한탄하며.
인생이 첫 구간부터 막혔다는 불길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날 정릉에서 종로까지 비틀거리며 걸어와 조계사 법당에서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르게 긴 머리로 가리고서 부처님께 절하는 척 엎드려 잠이 들며 나는 생각했다. 이것은 다른 인생을 살라는 하나의 계시라고. 세상 속에서 살되 세상에 소속되지는 말자고. 그렇게 시험 날짜를 착각해 외계인과의 인터뷰는 물거품이 되었지만 훗날 히말라야 여행은 농담처럼 현실이 되었다.
만약 우리가 전체 그림을 볼 수 있다면, 전체 이야기를 안다면, 지금의 막힌 길이 언젠가는 선물이 되어 돌아오리라는 것을 알게 될까? 그것이 삶의 비밀이라는 것을.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지나간 일이 아니라 지금 다가오는 길이다.
한 남자가 큰 회사의 사환직에 지원했다. 면접관이 그에게 사무실 바닥을 청소해 보라고 했다. 그의 청소하는 태도를 만족스럽게 지켜본 면접관이 말했다.
"당신을 채용하겠소. 고용계약서와 근무 조건 등 세부 사항을 보내 줄 테니 당신의 이메일 주소를 주시오."
남자가 말했다.
"저는 컴퓨터도 없고 이메일도 없습니다."
그러자 면접관이 말했다.
"이메일이 없다면 당신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요. 미안하지만 우리 회사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고용할 순 없소."
남자는 희망을 잃고 그곳을 떠났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주머니에는 단돈 10달러가 전부였다. 고민하던 그는 과일 도매상에 가서 10달러짜리 토마토 한 상자를 샀다. 그리고 집집마다 다니며 그 토마토를 팔았다. 두 시간도 안 돼 그는 전 재산을 두 배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같은 날 그 일을 세 차례 반복한 결과 80달러를 주머니에 넣고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남자는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날마다 토마토를 팔았다. 매일 그의 재산은 두 배 혹은 세 배 늘었다. 얼마 후에는 수레를 사고, 또 얼마 후에는 트럭을 샀다. 곧이어 여러 대의 배달 트럭을 구입했다. 5년 후 이 남자는 매우 큰 규모의 식품 도매업체 사장이 되었다.
성공한 남자는 가족의 미래를 위해 보험을 들기로 결정했다. 상담을 마칠 무렵 보험사 직원이 그의 이메일 주소를 물었다. 그러자 남자는 대답했다.
"나는 이메일이 없소."
보험사 직원이 놀라며 말했다.
"이메일도 없는데 이렇게까지 성공하셨군요. 만약 이메일이 있었다면 지금쯤 무엇이 되어 있을지 상상이나 하시겠습니까?"
남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아마도 사환으로 일하고 있겠지요."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삶의 여정에서 막힌 길은 하나의 계시이다. 길이 막히는 것은 내면에서 그 길을 진정으로 원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존재는 그런 식으로 자신을 드러내곤 한다. 삶이 때로 우리의 계획과는 다른 길로 우리를 데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길이 우리 가슴이 원하는 길이다. 파도는 그냥 치지 않는다. 어떤 파도는 축복이다. 머리로는 이 방식을 이해할 수 없으나 가슴은 안다.
누구도 우연히 오지 않는다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일어나며,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도 이유가 있어서 만난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모든 만남에는 의미가 있으며, 누구도 우리의 삶에 우연히 나타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내 삶에 왔다가 금방 떠나고 누군가는 오래 곁에 머물지만, 그들 모두 내 가슴에 크고 작은 자국을 남겨 나는 어느덧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대학 2학년 때의 초여름, 강의실을 향해 걸어가다가 국문과 후배와 마주쳤다. 어디 가느냐는 그의 질문에 '학기말 시험을 치르러 간다'고 대답하자, 그는 특유의 묘한 입 모양을 지으며 "선배도 시험을 쳐요? 전혀 어울리지 않는데요."하고 어이없다는 듯 말하는 것이었다. 그 말이 자못 충격적이었다. 같은 학생인데도 불구하고 나라는 사람은 시험 같은 현실적인 일에 맞지 않아 보이는 듯했다. 그는 그 말을 던지고 가 버렸지만 나는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길로 캠퍼스를 나와 도보여행을 떠났다. 물론 시험을 보지 않아 낙제를 해서 2학년을 다시 다녀야 했다. 그 여름 뙤약볕 아래 길가 과수원의 복숭아를 주워 먹으며 다닌 두 달 동안의 도보여행은 삶과 문학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신발은 낡아 밑창이 너풀거렸지만 내가 걸어갈 길이 분명해졌다. 그리고 곧바로 시 쓰기에 전념해 그해 겨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알 듯 모를 듯한 후배의 한마디가 많은 것을 바꿔 놓은 것이다.
졸업 후 중학교 임시 교사가 된 나는 문학에 몰두해야 할 시간에 자음접변과 두음법칙을 가르치고 있는 현실이 괴로웠다. 랭보는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대표시를 썼는데 서른 살까지만 살기로 한 나는 시 한 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선배 교사와 저녁을 먹으며 고뇌를 말했더니, 그는 '석 달만 지나면 그런 고민이 사라질 것'이라고 감자탕 속 통감자를 건져 먹으며 말했다. 내게는 그 말이 '석 달 후에는 고민조차 하지 않을 것'이라는 무서운 의미로 들렸다. 그래서 다음 날 사표를 내고 개나리꽃 만발한 운동장을 가로질러 나왔다. 한 달도 못 채웠기 때문에 월급은 사양했다. 더 늦기 전에 선배 교사가 내 삶의 방향을 튼 것이다.
그 후 생계비를 해결하느라 다시 몇 군데 직장을 전전한 끝에 나 자신이 사회 부적응자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조직 생활에 맞지 않기도 했지만 두통이 심해 매일 출근은 늦고 퇴근 시간까지 기다리는 건 힘들었다. 결국 몇 개월 만에 자발적인 추방자가 되어 무직자로 거리를 떠돌았다.
당시 서울 종로2가에 종로서적이 있어서, 수도승이 사원을 중심으로 떠돌 듯 그곳을 기점으로 들어가 책을 읽고 마음에 드는 시를 외웠다. 그러던 어느 날, 서점 화장실에서 한 남자가 아는 체를 했다. 시 동인 활동을 하던 시절, 동인지를 출간한 출판사에서 나를 한 번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내 시가 아니라 내 외모에). 화장실에서 그런 인사를 받으니 나 또한 그가 인상 깊었다.
그날 화장실 앞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그가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불교 잡지를 운영할 계획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고리타분한 내용 대신 명상과 영성을 이야기하는 잡지가 필요하다는 내 의견에 그는 동의했으며, 그래서 함께 힘을 합해 새로운 계간지를 내기로 결정하는 데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중 50분은 나 혼자 흥분해서 주장을 폈다.
우리가 만든 잡지는 비록 발행 부수는 미미했으나 구도자들과 영성 추구자들 사이에서 금방 화제가 되었다. 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이뤄 낸 의미 있는 성취였다. 잡지의 내용을 기획하고 글을 쓰면서 나 자신도 인도의 다양한 영적 스승들을 알게 되고, 내 삶이 인도라는 나라로 방향을 돌리게 된 시작점이 되었다.
잡지사를 그만둔 지 얼마 후, 서울 변두리롤 가는 버스 안에서 한 사람과 마주쳤다. 잡지사 일을 할 때 잠깐 만난 적 있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버스 안에서 얘기를 나눴고, 버스를 함께 내려서도 얘기를 이어 갔으며, 내가 어디를 가려고 했는지도 잊은 채 대화에 몰두하다가 우리 사회에 명상과 영적 추구에 대한 책이 너무 부족하다는 사실에 의견이 일치했고, 마침내 함께 출판사를 열기로 길 위에서 전격적으로 합의했다.
그리하여 얼마 후 그는 발행인이고 나는 편집장이 되어 '정신세계사'라는 출판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 일은 내가 명상서적을 소개하는, 평생에 걸친 작업에 뛰어든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 우연한 만남들이 아니었다면 내 삶이 어디로 흘러갔을지, 내가 한 인간으로 제대로 성장할 수 있었을지, 아니면 여전히 사회부적응자로 서점 주변을 떠돌았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소설가 보르헤스는 썼다.
"우리 삶을 스쳐 지나가는 모든 이들은 각각 특별한 존재이다. 누구든 항상 그의 무언가를 남기고, 또 우리의 무언가를 가져간다. 많은 것을 남긴 사람도 적은 것을 가진 사람도 있지만, 무엇도 남기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은 없다. 이것은 누구든 단순한 우연에 의해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분명한 증거이다."
어딘가에 나에게 정해진 섭리나 계획이 있고, 그것을 일깨우기 위해 적절한 시기에 사람들이 내 앞에 나타난다고 나는 믿는다. 지금의 내 삶에 그 관계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들은 온다. 사람들은 이유가 있어서 우리 삶에 나타나고, 때가 되면 우리는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이것이 진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의 나는 내게 길을 가르쳐 준 모든 만남과 부딪침의 결과물이다. 누구도 내가 걷는 길을 무작위로 교차하지 않는다.